[경남신문 칼럼] 김근식 교수
[경남신문 칼럼]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9.16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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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통일을 위하여

  광복 70주년에 우리는 최고조의 아찔한 위기를 목도했다. 한여름을 달구었던 휴전선에서의 급격한 긴장고조와 단 며칠 만에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를 실감하면서 지금 한반도는 하시라도 전쟁이 가능한 위험천만한 곳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역으로 실감케 하고 있다. 확성기 방송과 비무장 지대 포사격만으로도 우리가 북한군과 한미연합군의 전면전까지 감내하고 결심해야 하는 현실을 똑똑히 목도했다. 서해바다는 전쟁의 바다로 변한 지 오래고 휴전선은 남북의 치킨게임으로 포탄이 오고간다.

  더 무서운 건 긴장과 대결의 한반도에 남북의 구성원들마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혐오와 염증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적 긴장에 더하여 남은 북을 멸시하고 북은 남을 미워한다. 우리 내부의 이념대립은 도를 넘어 치유불가능한 정도다. 광복 70주년에 평화와 통일은 요원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통일은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우리의 준비가 잘 되어서가 아니라 북한 요인으로 인해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 시장은 이미 국가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널리 확산되어 있다. 계획경제는 시장경제와 공존하거나 시장경제로부터 지대(rent)를 얻지 않고서는 스스로 생존하기 힘들다. 고난의 행군 이후 스스로 자력갱생에 익숙한 ‘장마당 세대’의 의식은 이미 국가와 당에 의존하지 않는다. 최근 북한경제의 상대적 호전을 배경으로 시장세력과 권력 엘리트의 결합이 강고해지면서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권력집단 내부의 균열 가능성이 배태되고 있다. 북한의 실질적 변화가 위아래로 지속되면서 북한 내부의 정치적 변동과 근본적 변화의 씨앗은 이미 뿌려지고 있는 셈이다.

  북한발 통일의 기회가 점점 다가오는 현실에서 정작 우리의 통일 준비는 허망하거나 공허할 뿐이다. 대통령이 통일대박을 주장하고 정부가 통일준비위를 가동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통일은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남북관계 경색이 지속되고 군사적 긴장이 상존하는 지금의 한반도 현실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관용하지 못하고 상대를 공존의 대상이 아니라 용납 못할 적으로 인식하는 남북갈등과 남남갈등의 현실에서 통일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것이다. 북한 요인으로 통일이 갑자기 닥친다 하더라도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의 축적이 없이 북한주민의 마음을 사지 못하는 통일은 우리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맞이해야 할 통일은 반드시 평화로운 통일이어야 한다. 독일 통일이 아름다운 것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해서가 아니었다. 통일과정에서 단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통일에 합의했던 예맨은 3년 뒤 유혈사태를 동반한 내전을 겪고서야 통일되었다. 통일 이후 예맨은 장기독재하에 신음했고 지금은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온상이 되고 있다. 평화롭지 못한 예맨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비극이었다.

 


  1945년 해방은 우리가 준비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해방이었고 그 까닭에 해방은 ‘갈라진’ 해방으로 다가왔고 결국은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평화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다가오는 통일 역시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다. 평화로운 통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상대의 마음을 사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화해협력과 상호이해를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지 못한 채로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이 열린다면 상호 불신과 증오와 갈등이 난무하는 매우 폭력적인 비평화적 통일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내부에서부터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용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남남갈등은 남북갈등으로 확대되어 예상 밖의 폭력적 통일이 진행될지 모른다. 평화로운 통일을 받아 안기 위해 이제라도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평화 그리고 우리 내부의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5년 9월 16일(수)자 23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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