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7.2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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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자뷔, 국정원 대선 개입과 워터게이트

  댓글 공작·불법 감청 의혹 유사…거짓 위에 집 지은 권력 '최악'

  단순 3급 침입절도 사건의 취재를 맡은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는 체포된 5명의 절도범 중 한 명인 제임스 매코드라는 인물이 중앙정보국 출신으로 현직 대통령이자 차기 공화당 대권주자인 닉슨 캠프와 관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신문사는 어렵고 민감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기자를 한 명 더 투입하고 실체적 진실에 나아간다. 이들은 사건의 배후를 좇는 과정에서 내부고발자를 얻게 된다. '돈을 추적하라'는 팁에 따라 결국 범행 자금이 닉슨 재선위원회에서 유입되었다는 정보에 접근한다. 워터게이트의 몸통은 백악관에 존재하며,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조직적인 방해공작의 일환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진다. 닉슨이 60.7%라는 압도적 득표로 재선에 성공한 와중에 두 기자의 신변은 불안한 상태였다. 로버트 레드퍼드와 더스틴 호프먼이 기자 듀오로 나와 아주 담담히 일하는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I'm not a crook)". 코너에 몰린 닉슨이 워터게이트 해명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연루 혐의를 받던 측근을 해임하며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자신을 압박하던 특검마저 해임하며 수사 방해를 하던 대통령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는 국민적 여론에 직면했다. 결국 닉슨은 대법원이 중앙정보국과 대책회의를 하던 녹음테이프를 공개하라고 결정하고, 하원이 사법 방해와 권력남용으로 탄핵을 결의하자 탄핵 직전 사임을 발표한다. 최초이자 유일하게 스스로 물러난 대통령, 그리고 '게이트'라는 정치적 스캔들의 용어를 세상에 뿌리내린 오명과 불명예는 오롯이 그의 몫이 되었다.

  최근 국정원 사건으로 역사 속 워터게이트가 자주 언급된다. 대선 댓글 공작과 불법 감청 의혹 등 사건의 유사점 때문이다. 권력의 이념 공세가 극에 달했고, 도청 문제가 불거지자 국가안보를 전면에 내세워 비판 여론을 무마하려는 것도 쏙 빼닮았다. 기세등등한 제왕적 대통령이 국민과 정보기관을 바라보는 인식도 판박이다."법을 떠나 대통령이 하는 것은 옳다는 것이 신념이며, 대통령의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는 닉슨의 인터뷰는 묘한 데자뷔로 다가온다. 야권이 힘을 내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대부분의 언론이 숨죽일 때 담담히 세월호와 국정원 해킹 의혹을 다루는 손석희 앵커의 얼굴에서 레드퍼드를 발견한다. 1974년 시작되어 1976년 막을 내린 40년 전 워터게이트 사건, 실패한 대통령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올 초 미국의 학자들이 역대 대통령 44명의 랭킹을 발표했다. 역대 가장 훌륭한 부동의 대통령 1위는 노예해방의 링컨이다. 닉슨은 34위로 현대 인물 중에서 최악 2위에 해당한다. 현대 최악의 1위는 바로 대량살상무기라는 거짓말로 이라크전을 일으켜 경제를 파탄 낸 부시다. 4대 강과 자원외교, 그리고 방산비리로 국고를 탕진한 이명박 정부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이 실패했다고 최악은 아니다. 최악은 권력이 거짓위에 집을 지은 경우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5년 7월 27일(월)자 1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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