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멈춰버린 경제학 시계 … “가르칠 수 있고,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친다”
1970년대에 멈춰버린 경제학 시계 … “가르칠 수 있고,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친다”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6.25 1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선_ 정성기 경남대 교수의 질문 ‘지방대학 경제학 교수, 살 길이 있는가?’

  한국의 경제학자들, 그 중에서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경제학 교수들은 우파나 좌파나 경제학의 방법론을 새롭게 해야 한다. 왜 중국을 두고, 중국만을 두고 ‘가운데 있는 나라’라 하느냐, 이런 물음을 던지며 학문하고 가르친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을 본받으며 진정으로 실사구시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삶의 현장에서 진리를 찾는 학문적 주체성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2015 경제학공동학술대회가 열린 것은 지난 2월이었다. 그런데 이 학술대회는 개최 당시부터 ‘뒷말’이 무성했다. 좋은 논문을 통해 허우적대는 경제관료를 가르쳐야 할 경제학회가 경제관료(주형환 기획재정부 제1차관)에게 「한국경제의 현황과 전망」이라는 주제로 전체회의의 발표를 시키면서, 정작 1970년대부터 한국경제학 풍토를 비판하며 한국적이고 새로운 보편적 경제학을 추구해온 박우희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의 주제 강연 「한국경제학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는 첫날 저녁 만찬의 기념연설로 배치했기 때문. 이러한 배치는 학문공동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학술대회에 참석했던 한 경제학자는 “진지한 얘기는 듣고 싶은 마음도 없이, 행사장 양념으로 채우는 장면이라 후학이 보기에 민망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라고 귀띔했다. IMF사태, 2008미국발 경제위기 등 현실의 균열을 보면서도 경제학계가 이렇다 할 자기비판과 성찰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과 무관치 않은 대목이다.


  경제학공동학술대회는 특성상 58개 경제학 관련 학회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야말로 학문의 ‘연찬’을 하는 자리다. 현실의 문제점, 다양한 고민 등을 검토하고 이를 발판으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창구 역할을 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2월 25일 학술대회 둘째 날 한국사회경제학회 분과에서 눈길을 끄는 논문이 한 편 발표됐다. 이 논문은 최근 <교수신문> 지면을 통해 진행된 김경만 서강대 교수(사회학)와 김종영 경희대 교수(사회학)의 문제적 인터뷰와 일정 부분 문제의식의 공감대가 있는 것으로 읽혀졌다. 1979년 부마항쟁 주역이기도 했던 정성기 경남대 교수(경제금융학과)가 발표한 「한국자본주의의 공간성, 사회성과 경제학원론, 정치경제학원론의 존재론적 인식: ‘일자리와 삶’의 문제를 중심으로」다. 논문에 내재된 정성기 교수의 ‘문제의식’이 공적인 자리에서 발표됐기 때문에, 학술대회가 열린 지 시간이 꽤나 지났지만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정 교수 자신의 언어로 정리한다면, 이 논문은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 경남 마산의 경남대 경제학과에 들어가서 서울대 조순 선생의 『경제학원론』을 처음 접한 이후 40여 년 동안 경제학을 배우고, 가르치고, 학문하며, 부분적으로는 사회적 실천을 하면서 겪어 온 사회역사적 삶에 비춰 이 땅에서 있었던 (정치)경제학 관련 주요 논쟁을 평가하고, 이와 관련된 대학의 우파 경제학원론, 좌파의 정치경제학원론을 평가한 글”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적 경제학의 진화 과정을 탐색하기 위한 작업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정 교수는 발표 논문 도입부에 J.로빈슨의 지적을 내걸었다. 케인즈의 제자였던 로빈슨은 당시 신제도학파의 J.K.갈브레이스가 학회장으로 있던 미국 경제학회의 학술대회(1971년)에 초청받아 초청연설을 했다. 여기서 로빈슨은 젊은 자신이 겪었던 대공황기의 위기를 ‘경제학의 제1 위기’라고 말하면서, 1971 당시 미국 경제학계가 위기의 낌새를 어렴풋하게 알아채가고 있을 때, ‘경제학의 제2의 위기’가 도래했다고 일찌감치 지적해 화제가 됐다.
  로빈슨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가장 늦게 깨닫는 것이 경제학자이며,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쉬쉬해버리고 만다. ……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이론은 명백히 파산했다는 것이며,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이 해답을 가장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일이 또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걸 내세운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읽힌다. 하나는 한국적 경제학의 진화과정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경제학원론’의 정치학을 관통하는 지배원리를 읽어내기 위해서. 다른 하나는 앞의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내재된 경제학계의 불감증을 꼬집기 위해서.
  정 교수는 ‘한국의 지방대학 경제학 교수, 살 길이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논문을 전개했다. 자신의 존재조건을 명시하면서 과연 살아나갈 길이 있냐고 물으려면, 분명한 자신의 철학이, 정신이,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의 질문은 다시 이어진다. “한국의 경제학, 경제학자들은 제 기능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도대체 그는 이 논문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정 교수가 발표한 논문의 결론 부분을 정리했다.


  이 논문은 한국에서 대학 시절 이후 경제학, 경제교육을 해 온 사회역사적 개인으로서 나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지난 2002년에 필자가 내놓은 『탈분단의 정치경제학과 사회구성: 사회구성체 논쟁의 부활과 전진을 위하여』를 끝까지 책임지고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 진전시키려고 노력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학 시절 대학 校誌를 통해서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한국적 정치경제학, 그리고 이와 연관된 새로운 역사관과 새로운 철학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현재 수준에서 스스로 답을 한 것이기도 하다.
  이 논의에 기초해 후진국 개발독재하의 ’70년대 한국적 경제학 논쟁과 ’80년대의 피나는 한국자본주의사회 성격 논쟁, IMF 사태와 2008년 이후 세계대불황과 미네르바 사태, 세월호 사태, ‘장하준 현상’ 등을 상기하며 먼저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나온 (정치)경제학원론 교과서를 중심으로 드러난 교육현상 관련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경제학은 전체적으로 우파 경제학이 독점한 1970년대에 비해 1980년대를 거치며 민주화 과정에서 좌파 경제학도 합법적으로 유통돼 다양성이 확장됐다. 그러나 여전히 우파 경제학 중에서도 미국의 우파적 경제학이 압도적이며, 학문적 자유경쟁이 매우 제한돼 있다.
  둘째, 우파 경제학이나 좌파 정치경제학이나 사회역사적으로 보편타당하다는 전제를 갖고 있으나, 이는 서구 문화에 기초한 서구적 학문일 뿐이라는 것이 이미 서구 내에서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2008년 대불황을 계기로 서구경제·사회에도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셋째, 한국의 경제학계는 1970년대에 서구 경제학의 세계적 보편타당성에 의문을 표하고 비판하는 움직임, 그리고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이런 방법론적 반성과 모색은 거의 진전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교과서 수준의 한국 경제학 차원에서는 거의 파산 직전이거나 암 말기 상태다. 이것은 지방대만이 아니라 서울권 대학도 마찬가지다.
  넷째, 우파·좌파 경제학 교수들은 교육자로서, 사회적 공인으로서 한국의 21세기 학생들에게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서구의 세계관에 기초한 경제학으로 가르칠 수 있는 것, 가르치고 싶은 것만 가르친다. 다섯째, 전체적으로는 다양성의 표현이지만, 개별적으로는 편협한 우파·좌파 이념교육으로 대학이 학생과 사회를 분열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원천이 되고 있다. 여섯째, 2차 대전 후 해방되고도 분단과 전쟁을 겪은 지 50년이 지났지만, 남북한 간의 차이와 적대를 넘어선 교류, 협력이 가능하게 하는 노력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무관심이나 심지어 적대적 시장체제 우월감을 심어주고 있다. 현재의 경제학과 그것에 기초한 정책으로 경제군사력으로 북한을 흡수통일하게 되면 세계시장에 편입돼 자유, 경쟁과 함께 1:99의 불평등과 대량실업, 저복지의 재난을 한반도 전체로 확장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한국은 물론 분단되지 않은 많은 선진국들도 경험하는 고통이다.
  (정치)경제학원론 수준에서 보다 순수한 경제이론적, 경제철학적 관점에서 내릴 수 있는 몇 가지 결론과 그 교육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파 경제학은 ‘사회’, 혹은 ‘사회적’이라는 언어 자체를 배제하고, 정치, 문화도 배제하고 있으므로 사회과학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우파의 경제학은 자연과학이다. 이것은 오늘날 강조되는 융합, 복합, 창의를 가로막는 낡은 기계론적 사고방식이다.


  둘째, 좌파 경제학은 우파 경제학을 스스로 진정한 사회과학이라고 여기는 경항이 강한 데 비해, 실제로는 경제현상의 시간, 역사성은 강하지만, 공간·사회성은 매우 빈약하다. 계급과 국가간 관계, 체제를 강조하며, 경제주체로서 ‘개인’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한 점에서 ‘개인 없는 사회’ 개념이 되고 있다.
  셋째, 기존 우파와 좌파 경제학으로는 사회는 물론 경제 자체도 제대로 알기 힘들다. 개별 국가는 물론 개인이나 가정, 사업체 등도 모두 일상생활이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이뤄지며, 그런 관계가 온전하지 않을 때 경제생활은 물론 삶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넷째, 기존 우파와 좌파 경제학은 특정 시간·공간의 개인의 일상적 경제생활과 일, 삶 자체의 사회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날 취업에서 강조되는 대졸자 청년의 사회성 교육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이제 한국의 경제학자들, 그 중에서도 대학에 몸담고 있는 경제학 교수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우파나 좌파나 경제학의 방법론을 새롭게 해야 한다. 왜 중국을 두고, 중국만을 두고 ‘가운데 있는 나라’라 하느냐, 이런 물음을 던지며 학문하고 가르친 정약용 선생의 가르침을 본받으며 진정으로 실사구시해야 한다. 당대 세계의 중심인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다가 해골 바가지 물먹고 크게 깨친 후, 당나라에 가야만 진리를 깨칠 수 있느냐며 국내에 남아서 공부하고도 당대 세계적의 학자가 되고 오늘날 元曉學의 종조가 된 원효의 보편적 진리를 찾는 정신, 그리고 자기 삶의 현장에서 진리를 찾는 학문적 주체성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이에 앞서서 30년 전에, ‘한국사회에서는 그간 근대화에 필요한 정신이 없었고, 있다면 의욕만 있었고, GNP 성장사상만, 미국식 경제이론만 있을 뿐’인 상황에서, 한국경제학은 ‘방황과 모색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이제 겨우 한국경제학의 정립 필요성을 의식하고 있는 단계에 불과하다’고 한 박우희 선생의 말을―오늘의 학피아, 교피아 소리까지 나오는 참담한 현실을 보면서―다시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아울러 ‘한국적 경제학’ 논쟁을 이끌며 고군분투하다가 지난해 타계한 주종환 선생이 남긴 말, “20세기의 고난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험한 한국민이기에 한국의 경제학자야말로 새로운 경제학의 체계적 창조자가 될 자격과 가능성이 있다”고 한 말을 다시 새겨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한국적인 (정치)경제학’을 넘어서 ‘세계보편적인 (정치)경제학’으로 가야 한다. 그것조차 넘어서 ‘한국적이고 세계적인 사회역사경제학’으로 가야 한다.
  이제 앞으로의 구체적인 연구주제를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필자가 1970년대 이래 이 땅의 (정치)경제학 논쟁을 정리하고, 감히 (정치)경제학 교과서를 거칠게 재검토한 것이 다소나마 성과가 있다면 이제 (정치)경제학의 주제별, 전공별로 구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교과서에 들어있지 않지만 중요한 내용은 당연히 넣어야 한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현상유지와 개혁과 혁명이라는 실천의 근거로 삼은 인식 내용, 즉 기존 (정치)경제학의 색안경으로 인식한 한국경제론 혹은 한국자본주의론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관심사별로 한국과 정치경제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 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오로지 학문적 진실만을 추구하는 자세로 북한에 대해, 북한과 남한의 관계, 남북한과 관련 국가들과의 (정치)경제관계를 공부해야 한다.

 <위 글은 교수신문 2015년 6월 23일(화)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