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보] 그때 그 사건
[국회보] 그때 그 사건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6.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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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북공동선언과 남북정상회담 결과에 관한 국회보고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 분단 55년 만에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것이다.

  6월 15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①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②우리의 남북연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공통성이 있다는 점을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 지향 ③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 ④경제 협력을 비롯한 남북 간 교류의 활성화⑤합의사항 실천을 위한 당국자간의 회담개최 등 5개항의 ‘6·15남북공동선언’을 했다.

  당시 국회는 제16대국회가 6월 5일 개원식을 갖고 막 출범한시점이었다. 국회는 6·15남북공동선언이 있은 4일 후인 6월 19일, 본회의를 열고 박재규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결과에 관한 보고’를 받았다.

  박재규 장관은 제16대국회 개원을 축하한 후 남북정상회담의결과 보고가 제16대국회 본회의 첫 번째 정부 보고임을 상기시켰다. 박 장관은 방북 규모가 김대중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 130명,기자단 50명이었고 방북기간 중 남북정상이 세 차례 회담과 만찬등을 가지며 북한 지도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말했다.

  특히 6월 14일 오후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4시간여의 단독회담을 갖고 통일과 남북문제 전반에 대해 허심탄회한의견을 교환했으며 이 자리에서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게‘남북 사이에는 이제 더 많은 원칙이나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하나라도 더 많은 실천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 실천 가능한 사항부터 합의하여 이를 이행해 나가야 함을 강력히 촉구하여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고 보고했다.

  이어 ‘대통령이 제시한 우리의 기본입장은 그동안 정부가 견지해 왔던 원칙과 여야의 초당적 충고 그리고 국민 각계각층의 의견을 결집한 것’이라는 점을 설명했고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해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점도 밝히면서 ‘이번정상회담은 남북 최고 당국자간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민족분단사에서 역사적인 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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