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5.22 14: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축제와 불법포획 사이의 고래여, 고래여

  고래의 외형적인 정체성은 ‘힘’이다. 고래를 뜻하는 영어 ‘Whale’이 바퀴를 뜻하는 ‘wheel’에서 왔다고 한다. 고래가 바다를 헤쳐 나가는 모습이 큰 바퀴가 굴러오는 것 같다고 생각한 그 어원의 상상력에 동의한다.

  그러나 고래의 생태적 정체성은 ‘모성’이다. 사람처럼 새끼를 낳고, 젖을 물려 키우는 고래의 모성애는 지극정성이다. 자식 하나 낳아 기르는데 제 살과 피를 다 녹여 젖 먹여 키우느라 등뼈가 드러나도록 앙상해진 흰긴수염고래 어미의 모성은 상상만으로 감동이다.

  정호승 시인은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다면 바다가 아니다’고 노래했다. 시인의 노래처럼 바다가 고래에 의해 완성된다면 바다의 가르침 중에 고래의 모성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래바다는 모성의 바다다. 2009년 울산시는 울산 해안선 155㎞밖의 바다를 ‘고래바다’로 명명했다. 그 바다가 모성의 바다며, 고래에게서 모성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푸른 현장이다. 그러나 그 현장이 흔들리고 있어 문제다.

  울산 바다인 ‘귀신고래회유해면’은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돼있다. 이름뿐이지 귀신고래는 오랫동안,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울산 바다로 하염없이 귀신고래의 회유를 기다려왔다. 현상금을 내걸고 귀신고래를 찾았다.

  울산으로 돌아오지 않는 귀신고래가 멕시코만으로 회유했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다. 미국 오리건주립대 연구진은 ‘바르바라’라는 애칭이 붙은 암컷 귀신고래를 위성으로 추적했다. 바르바라는 172일 동안 무려 2만2500㎞ 이동했다. 그 경로는 우리가 기다리는 이른 바 한국계 귀신고래 서식처인 러시아 사할린에서 태평양을 향해 항진해 미국 알래스카, 캐나다로 이동한 뒤 해안을 따라 멕시코 바자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나는 동물의 회유는 DNA에 저장된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 오리건주립대 연구진 보고로 귀신고래 회유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데 안전한 곳을 찾아간다는 ‘모성 진화설’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부모 고래가 그물이 지뢰밭처럼 펼쳐져 있고, 불법포획이 판을 치는 울산 바다로 자식을 낳아 기르게 하기 위해 목숨 걸고 오겠는가. 귀신고래가 한때 자신들의 주요 서식지인 울산 바다를 포기하고 멕시코만을 택한 것이 공식화되면 울산은 천연기념물 제126호를 자진 반납해야할 형편이다.

  28일부터 시작되는 고래축제가 장생포로 옮겨갔다. 고래축제는 고래 사랑을 축제 전면에 표현하여 모두 함께 즐기기 좋은 축제로 진행된다고 선전한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고래축제가 막대한 ‘예산폭탄’을 퍼붓고 유망축제에서조차 탈락된 것은 고래를 음식으로 보는 울산시와 남구청의 정책 때문이다. 축제장에서 고래고기를 삶아 팔면서 고래 사랑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축제장이 한국 고래고기 본산지인 장생포로 옮겨갔으니 많은 관광객이 고래축제가 고래고기축제인지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축제를 앞두고 울산 남부경찰서가 불법으로 포획된 밍크고래 12마리를 사들여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판매해 21억30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박모 씨를 구속하고, 고래를 공급한 안모 씨 등 8명을 불구속한 울산발 뉴스 앞에서, 고래축제보다 무엇이 더 시급한지를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분명한 것은 이 시간에 고래가 죽어가고 있다. 울산은 축제로 즐거울 뿐, 그런 현실을 방치하는 공범자인 것을 모른다는 말이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5년 5월 22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