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칼럼]임을출 교수
[매일경제 칼럼]임을출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4.0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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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기지개 켜는 北…대북정책 다시 짜야

  얼마 전 북한 최초의 온라인 국영 쇼핑몰인 '옥류'가 영업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수입품도 아닌 국산품이 주로 팔린다고 한다. 이를 반영하듯 북한의 언론매체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국산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각종 식료품과 화장품, 아동용 수영복, '아리랑' 휴대폰, 돌 공예품, 석재품, 신발 등이 번지르르하게 등장한다.

  이에 따라 요즘 북한에서는 국산품 애용운동의 열풍이 거세다. 이 운동의 취지 등은 일제강점기 민족자본을 육성하고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일본 상품을 쓰지 말고 국산품을 애용하자고 벌였던 조선물산장려운동을 꽤 닮았다.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3월 30일 '사랑하라 우리의 것을'이라는 제목의 정론을 발표하면서 국산품 애용과 애국심 함양을 호소했다.

  이처럼 요즘 북한에서는 불과 지난해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 속출하고 있다. 식량을 비롯해 모든 것이 부족한 만성적인 공급 부족에 시달려왔던 판에 박힌 북한 이미지를 고려하면 놀랄 만한 현상이다. 북한 시장에 나와 있는 제품의 80% 이상이 중국산 수입제품이라는 기존의 각종 연구 결과나 전문가의 분석이 무색할 지경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취임 일성으로 강조했던 인민생활 향상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일까.

  국산제품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백화점, 편의점, 온라인 쇼핑몰 등 국영 상점과 유통망이 점차 세력을 확장하는 모양새다. 장마당으로 대변되는 민간 시장의 확대 발전을 허용하면서도 품질과 가격에 서비스 경쟁력을 부단히 높이면서 그동안 수입품으로 넘쳐났던 장마당에 완전히 밀렸던 국영 상점이 품질, 가격, 서비스 경쟁으로 반전을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국영 상점으로서 식료품과 일용품을 판매하는 첫 체인점인 황금벌상점은 품질과 가격경쟁력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가까운 시일 안에 평양에 100여 개의 체인점을 내고, 나아가 지방 도시들에도 확대할 계획이다. 24시간 편의점으로서 주문배달, 이동판매서비스, 세탁주문배달, 비행기표나 열차표의 예약서비스까지 제공할 예정이다. 지금은 일부 신흥 부유층을 고객으로 삼고 있는 것 같지만 북한의 유통, 소비문화를 주도할 잠재성이 엿보인다.

  북한에서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적지 않은 자금의 내부 순환이 이뤄지고 있음도 짐작하게 한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는 걸까. 오늘날 김정은 정권은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로부터 기존의 각종 제재를 비롯해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가 부과한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하지만 북한 경제는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 경제는 2011년부터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는데, 앞으로도 경기 호전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2~2014년 김정은 정권이 취한 경제관리 개선 조치에 따른 공장, 기업소, 협동농장 등의 자율성이 크게 확대되는 가운데 시장 역할이 증대되었고, 각종 외화벌이 사업의 확대에 따른 자금 유입과 내수 시장의 활성화도 경기 호전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산화 우선 정책은 내부 시장경제를 활용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돌파하기 위한 자립경제의 기반을 다지고, 북한 특유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목표와도 연관되어 있다. 사실 북한 주민들에게 국산제품은 저질, 싸구려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이런 인식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북한 국내 경공업공장들에서 생산한 소비품을 사가는 북한 내 구매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런 현상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대외 환경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다만 국내 공급 기반을 복원하고 있는 북한 경제를 보면 대북 제재의 실효성은 이제 더는 주장하기 힘들 듯하다. 핵을 비롯한 국방력을 갈수록 강화하면서 경제도 나날이 호전되고 있는 오늘날 김정은 정권의 실상을 고려하면 이제 뭔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대북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시점으로 보인다.

<위 글은 매일경제 2015년 4월 8일(수)자 3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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