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3.2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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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회충 싸움에 고래등 터진다

  지난 13일 울산발 ‘고래회충’ 보도에 ‘고래도시 울산’이 쌓아놓은 공든 ‘고래탑’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울주군 서생면과 동구 대왕암에서 30년 경력의 낚시꾼에게 잡힌 망상어와 바닷물고기에서 다량의 기생충이 발견됐다는 뉴스가 전국으로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그 원망이 울산과 고래에게 쏟아졌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다는 말이 있지만 이번 사태는 고래회충 때문에 고래등이 터진 꼴이 되고 말았다.

  고래란 이름을 단 이 회충에 감염된 해산물을 날 것으로 섭취할 경우 인간에게 감염될 수 있다고 한다. 고래회충이 무서운 것은 내장을 파고드는 습성이 있다는 것. 사람이 감염될 경우 급성이면 1~12시간 이내에 구토, 복부 통증 등의 증상이 일어나고, 만성이면 1주 후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익혀 먹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회를 좋아하는 국민들에게는 충격인 뉴스였다. TV를 통해 유충이 꿈틀거리는 모습이 생생하게 전달되었으니 오죽했겠는가!

  고래회충은 보통 바다 생선을 날것이나 잘 익히지 않은 상태로 먹었을 때 감염된다. 최종 숙주는 돌고래, 물개 등의 해양 포유류인데, 그 위장에 기생하고 있는 유충이 바다 새우류의 몸속에 들어가면 그곳에서 성장한다고 한다.

  바다가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인가. 유충을 가지고 있는 새우류가 상위층의 먹이사슬에 잡혀 먹히고, 그것들을 최종 싹쓸이 포식자인 사람들이 먹다가 고래회충증이 생긴다. 감염 유충은 태평양의 연어, 홍돔, 청어, 대구, 명태, 참조기, 고등어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고 하니, 바다에서 잡히는 것 무엇이든 고래회충이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익혀 먹을 경우 문제가 없는데, 한국인이 회로 즐겨 먹는 붕장어, 오징어, 낙지, 광어, 방어 등에서 유충이 많이 나타난다고 하니, 고래회충 보도 이후 전국의 횟집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초밥집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터진 ‘고래회충’ 뉴스에 이런저런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고래회충이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고래가 원망스러웠다.

  뉴스가 보도된 후 선배 교수 한 분이 전화를 해 필자가 고래보호를 하다 보니 고래가 많아져 고래회충이 덩달아 많이 생겼다며 봄 도다리 철에 도다리를 못 먹게 된 ‘죄’를 필자에게 떠 넘겼다. 물론 격의 없이 지내는 선배 교수의 우스갯소리였지만, 필자도 그 뉴스 이후 도다리를 회보다 쑥국으로 즐기고 있다.

  그러나 기생충 전문가인 단국대의 서민 교수는 “바다에 사는 대부분의 물고기에 이 고래회충이 들어 있고, 심지어 오징어에도 들어 있다”며 “신선한 회에는 문제가 없는데 고래회충을 탓하며 맛있는 회를 안 먹는 건 모기 잡으려고 대포 쏘는 거랑 똑같다”고 모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그건 늘 있는 고래회충인데 쉽게 끓는 주전자 같은 언론보도나 우리에게 모두 책임이 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고래보호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 해답을 묻는 질문에 늘 같은 대답을 한다. ‘사람이 변해야 한다’고. 고래를 보호하는 목적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환경오염에서 바다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바다가 살아야 고래가 살고, 고래가 살아야 사람이 더불어 같이 사는 것이다. 바다는 대책 없이 오염돼 가는데 고래회충의 죄를 고래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사람의 죄다.

  울산이 고래를 통해 공해도시의 오명을 털어내고 생태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했다. 그러나 길이가 몇 ㎝ 안 되는 고래회충으로 입은 피해는 그 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젠 환경이 아닌 생태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다. 환경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생태는 사람과 자연이 공생해 함께 사는 일이다. 생태도시 울산은 자연을 위해 투자하자는 말인데, 우리는 자꾸 다른 길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5년 3월 20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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