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도道, 정신주의적 자기지향
문학, 도道, 정신주의적 자기지향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3.1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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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호 시인 / 백남오 수필가 와의 대담

[대담에 들기 전에]

 

계간《경남문학》2014년 겨울호의 마지막 원고를 손질하고 있는 분주한 시간,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이 감미로운 음악을 흘려낸다. 월간《수필과 비평》의 유인실 주간이다. 가끔씩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라 3일째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는 전주의 눈 소식을 낭만적으로 물어본다. 한겨울의 적막감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런 나의 마음과는 달리 유 주간은 내년도《수필과 비평》의 특집 내용을 상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색을 하고 내용의 핵심을 파악해 보니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직감한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원로들을 모셔 그 분들의 담론을 듣겠다는 것이다. 중견 수필가를 사회자로 내세워 우리시대의 제반 현안을 진단하며 미래에 대한 그 분들의 고견을 2015년도 특집으로 묶어내겠다는 야심찬 기획이다.

일언지하에 나의 무능을 내세우며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유 주간은 나의 은사님이신 최동호 교수를 지명하며 좋은 말씀을 수필 독자들과 함께 듣고 싶다는 것인데, 이쯤되면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일단 교수님께 여쭤보고 말씀을 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나의 고민은 깊어졌다. 교수님께서는 바쁘신 분이라 시간을 내기도 어렵겠지만, 시를 쓰시고 시 비평을 중심으로 활동하셨기에 수필에 대한 생각이 어떠할지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음날 약간은 어려운 마음으로 교수님께 구체적인 내용을 전화로 말씀을 드렸더니 쾌히 시간을 내주겠다고 하셨다.

2015년 2월 11일, 때마침 경남대 박재규 박사의 제10대 총장 취임식이 있던 날, 마산의 무학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와 있고 겨울 합포만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하늘정원’에서 교수님을 마주하고 여러 가지 유익한 시대의 담론을 나눌 수가 있었다. 곁에서 온 정성을 다하여 사진을 찍어 주신 경남대 국문과 김정대 교수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대담내용]

 

백남오: 교수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저희 수필 독자들을 위하여 귀한 시간을 내주셔 감사합니다. 2013년 8월,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서 정년을 하셨지만 명예교수, 경남대학교 석좌교수,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 회장, 한국문학번역원 이사, 호암상 위원 , 강연 수락, 집필활동 등 여전히 바쁜 일정을 보내고 계시는데 퇴임 전과 후의 특별한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또한 요즘 근황은 어떠십니까.

 

최동호: 오직 열심히 집중할 뿐입니다. 대학에서 정년하면서 느낀 가장 큰 소감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매우 짧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입니다. 생이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 오는 것은 허무감뿐인 것입니다. 근 40여 년 대학에 몸담고 있었지만 그 시간이 매우 짧게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그 아쉬움을 줄이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한다는 것이 지금의 심경입니다.

 

백남오: 개인적인 얘기를 먼저 드려 봅니다. 교수님과 저는 1979년 대학 강의실에서 사제의 인연으로 첫 만남을 한 후 35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습니다. 문학적으로는 십 년이 조금 더 지난 것 같습니다. 2002년 당시 저는 문학의 꿈을 접어 버리고 지리산에 빠져, 그 산을 수 십 년 오르내리며 얼기설기 일기 같은 글을 써 둔 상태였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글로 인하여 교수님의 추천을 받아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는 늦은 50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수필 창작론’을 강의하며 제자를 키우고 수필 전문지나 언론사에서 원고 청탁을 받을 정도로 성장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의 글에서 어떤 문학적 소양을 발견하셨는지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혹시 기억나는 것 말씀해 주시면 수필가의 덕목으로 생각하고 더욱 매진할까 합니다.

 

최동호: 백 선생의 글에서는 문학을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문학 지망생과는 구분되는 강한 정열과 힘을 느꼈습니다. 저는 여기서 ‘정열도 재능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열을 가지지 못하면 크게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일시적 재능이라는 것은 쉽게 사라지는 불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열과 지구력이 문학을 이끌어 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동력이라고 믿습니다. 하루살이처럼 사라지는 문학적 재능은 오히려 그를 위해 불행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중요한 병폐는 좋은 산문을 많이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입니다. 좋은 산문은 사람들과의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데 중요한 매개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 문화적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주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것입니다. 시적 정열은 많은데 산문적 소통은 부족한 것이 우리 문단의 약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훌륭한 산문가 또는 수필가들이 우리 사회와 문단을 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입니다. 이런 점에서 백 선생이 앞으로 우리 문학을 위해 할 일은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백남오: 교수님께서는『수원 남문언덕』등 7권의 시집 외도 주요 저서로는 『현대시의 정신사』『불확정 시대의 문학』『한국 현대시의 의식현상학적 연구』『평정의 시학을 위하여』『삶의 깊이와 시적 상상』『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디지털문화와 생태시학』『현대시사의 감각』등 주옥같은 저서를 남기셨습니다. 또한 고산 윤선도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두루 수상하셨습니다. 제14회 대산문학상 평론 부분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명실공히 석학의 반열에 드셨다고 생각합니다. 학문적으로는 특별히 정신주의 문학의 산맥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문학에서 정신주의란 어떤 것인지요.

 

 

▲ 최동호 시인

최동호: 조선조 시대에도 재도파(載道派)와 사장파(詞章派)가 대립한 바가 있습니다. 문학을 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문학을 수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대립입니다. 저는 재도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에서 도를 찾는다는 것은 정신주의와 연관됩니다. 말초적 감각적 문학은 일시적인 반응은 좋을지 몰라도 평생의 업으로서의 문학은 아무래도 일관된 정신주의적인 자기 지향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지향점이 없다면 목표를 상실하기 쉽고 항상 방황하게 됩니다. 사장파가 퇴폐와 자기부정으로 치달리기 쉬운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시는 일회용 휴지가 아니라는 것이 저의 강한 소신 중의 하나입니다. 저의 정신주의는 ‘하나의 도’라는 불이(不二)의 시학으로 나아가고 이론적으로는 ‘서정시의 삼각형’으로 집약됩니다. 인간의 삶과 시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이 전자의 주장이고 고전적 명시들은 모두 구조적 견고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체-대상-매개물’이라는 삼각형으로 요약됩니다. 다시 말하면 김소월의「진달래꽃」에서 ‘말하는 화자-떠나는 님-진달래꽃’이 삼각형을 이루어 사랑의 슬픔을 노래하고 이 구조가 견고하기 때문에 반복적 생명력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초현실주의가 등장한 이후 20세기 후반의 한국현대시에서 이런 삼각형이 다양하게 변주되기는 하지만 그 내면에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시가 지속적 생명력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백남오: 그러한 문학 이론과 창작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요. 이론과 창작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최동호: 저는 그것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제가 문학을 공부하던 시대인 1960년대는 이론의 불모지였습니다. 서양의 비평 이론을 공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창작과 이론은 서로 회통(會通)하는 것이고 서로 보완하는 것이지 분리되거나 적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물론 이론에 치중하다 보면 창작의 코드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회통의 코드를 각자의 방법으로 찾아야 극복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양자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닙니다. 엘리엇(T.S. Eliot)이나 보들레르(C.P. Baudelaire) 등 세계적인 대가들은 모두 어느 한쪽에 치우쳐 자신의 문학을 펼쳐나가지 않았습니다.

 

백남오: 그 수많은 저서를 집필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와 사색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읽으신 책 중에서 가장 감명 깊은 것 한두 권만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동호: 하나는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의 『법구경』입니다. 두 권 모두 제가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그것을 극복하는 힘을 갖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상의 양식』에서는 퇴폐와 열망이 『법구경』에서는 연민과 깨달음이 느껴졌습니다. 누구에게나 젊은 날의 번민은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열정과 좌절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이 책들을 읽었고 이를 통해 내 나름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백남오: 오늘날 우리 문단에서 수필 장르는 엄청난 양적 팽창을 보이고 있습니다. 시인 다음으로 많아서 5천여 명의 수필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 전문지만도 30여 종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문학 중에서도 주변 문학이란 인식이 매우 강합니다. 각종 문학상의 수상자도 수필가는 배제되며, 대학의 국문과에서 필수 과목도 아니며, 문학사의 기술면에서도 본류에서 소외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에 대하여 교수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필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최동호: ‘수필은 주변 문학이다.’라는 말은 당연히 부정되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말의 횡포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 수필의 양이 질적 수준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문학에 대한 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정말 아름다운 수필이 얼마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수필가들이 먼저 수필을 본격적인 문학 작품으로 대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누구나 마음 가는대로 함부로 쓸 수 있는 것이 수필이 아닙니다. 저는 진정한 수필은 다른 어떤 장르에 못지않은 문학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백남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인문학의 위기가 화두로 떠올랐고, 덩달아 문학의 종말을 예언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수필계에서는 미래 문학의 대안으로 수필 시대가 열릴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사실 수필은 시의 지나친 압축과 상징으로 인한 난해성, 소설의 허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체험과 사색의 문학입니다. 시와 소설이 해낼 수 없는 대단히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장르이지요. 실제로도 우리문학사에서 이상, 김진섭, 김소운, 윤오영, 이양하, 피천득, 민태원, 정비석, 법정 스님의 수필은 그 어떤 문학보다 울림이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독자를 배려하는 측면에서 볼 때도 베스트셀러는 에세이가 차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습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최동호: 지금 백 선생이 거론한 수필가들은 모두 국민적 수준의 명 문장가들입니다. 일반인들이 웬만큼 알려진 시인이나 소설가 이름은 몰라도 그 분들의 수필은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 일상 체험이 모두 글이 되는 미래에 수필이 일반 대중에게 다른 어떤 장르보다 더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르라는 견해에 적극 동감합니다.

문제는 누가 얼마나 탁월한 수필을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꼭 베스트셀러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수필에는 반드시 많은 독자가 함께할 것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미 소설은 독자의 눈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시고 수필의 미래를 밝게 보시기 바랍니다.

 

백남오: 지금 시단에서는 교수님께서 주창하고 있는 ‘극서정시’의 영향으로 짧은 서정시가 하나의 흐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필단에서도 5매 수필 등 짧은 수필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수필의 분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동호: 디지털 시대의 코드는 ‘경박단소형(輕薄短小型)’입니다. 스마트폰을 보세요. 그리고 컴퓨터 칩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는 극서정의 단형시, 소설은 미니 픽션, 수필 또한 단형 산문으로 나갈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단거리 주자가 되었습니다. 관심의 지속이나 사고의 집중이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어려워진 탓입니다. 컴퓨터 화면 하나나 스마트폰 한 면 정도에 모든 이야기나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 물론 반대로 무협지 같이 대하 장편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일 것이고 일반적으로 모든 사고나 감정의 표현을 축약시키고 사는 것이 디지털 유목민 시대의 인간들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속도감이 가중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시대 정신이라고 할 때 그것은 헤겔이 생각하던 19세기 중반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남오: 교수님께서는 문학 이론가, 문학 평론가, 시인으로서 평생을 살아오셨지만 계간《서정시학》을 창간하는 등 출판인으로서도 상당한 명성과 위상을 가지고 계십니다.《서정시학》에서 출판된 책만도 3백 권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출판계의 현황과 미래의 출판계는 어떻게 변화되어 갈까요.

 

최동호: 일단 종이책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아마 e-book으로 가는 것이 대세가 될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젊은 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을 합니다. 저희 세대는 종이책의 질감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던 기억이 귀중한 독서 체험이었습니다. 그러나 눈 뜨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켜는 세대의 경험은 우리세대의 경험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종이책 문제가 아니라 젊은 세대 대다수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생각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나 티브이 채널을 바꾸듯이 생각하지 않고 찰나적으로 산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종이책의 장점은 책장을 넘기면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나름의 세계를 성숙시키고 펼쳐간다는 것입니다. 사유하기를 포기한다면 인간은 컴퓨터나 게임의 종속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유하지 않는 인간은 독자적 인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에 종속된 인간으로 사는 것이 됩니다. 저는 출판계의 어려움보다도 이점을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백남오: 오늘날 우리사회에는 너무 많은 갈등이 팽배해 있습니다. 남북한의 갈등은 이미 오래 고착된 이념의 문제입니다만 그로 인한 남남 갈등도 위험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외도 지역 간, 노사 간, 남녀 간, 세대 간의 갈등까지 더해 난마처럼 얽혀 있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러한 근본 원인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최동호: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사회의 갈등 요인은 일차적으로 소통의 부재로 인한 것입니다. 모두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양보할 줄 모릅니다. 문단도 그러하지 않습니까. 세대 간, 지역 간, 정당 간 상대방이 하는 것은 일단 반대하고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과잉 현상이라고 봅니다. 무책임한 주장, 진영의 논리가 진보와 보수로 변질되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정치권은 한편으로는 이를 조장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를 이용하면서 자신들의 권력 쟁탈에 여념이 없습니다. 사회의 지도적 어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서로 좌충우돌만 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나서서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습니다. 소통과 포용과 용서의 정신을 크게 진작시키지 않는다면 이런 분열적 병폐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새로운 국민운동이라도 전개해야 할 시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도층에 기댈 것이 아니라 지도자나 국민 모두가 하나가 되는 국민소통운동이 밑에서부터 일어나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 백남오 수필가

백남오: 교수님은 지난 40여 년간 학계와 문단과 평론계 등 각계에서 이룩한 업적과 공로가 참으로 높고 크십니다. 그 중에서도 문단과 학계에 100여명의 직계 제자를 배출시킨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보통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그 비결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각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장점을 그대로 인정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 주시며 늘 함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심으로 배우고 싶습니다.

 

최동호: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 각자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지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의 단점보다도 그 장점을 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남의 장점을 잘 배우는 사람이 남을 앞서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공자도 석가도 예수도 제자를 지도할 때 그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길을 최선을 다해 가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문학의 길이 평생의 업으로 삼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빨리 포기하라고 합니다. 미련을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는 유혹이 많지 않습니까. 재능이 너무 많은 사람은 그래서 실패하기 쉽습니다.

재능 없는 사람일수록 한 가지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 저의 좌우명입니다. 그들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제 목표인데 그 과정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한용운은 ‘길 잃은 한 마리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했습니다. 사실 문명(文名)을 얻거나 교수가 된 제자보다는 중간에서 좌절한 제자들을 돌이켜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가슴이 아픕니다. 혹시 내가 잘못 지도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자주 합니다. 때로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백남오: 좀 엉뚱한 질문입니다만 백년 후 인류의 미래는 지금과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문화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최동호: 디지털 코드는 종이책이 종말을 고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더 다양하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미디어를 만들어 냈지만 중요한 것은 인류가 종전의 단계로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기계와 인간이 결합되는 시대가 스마트폰 시대가 아닙니까. 이제 더 나아가 인조인간 즉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인간적인 것을 지켜 주는 마지막 제어 장치가 시라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슬픔과 증오의 감정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용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문화와 예술이 인간을 지켜주고 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그 역할은 세상이 삭막해질수록 더욱 커질 것이라 전망합니다.

 

백남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많은 아픔과 시련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삶의 과정에서 겪는 필연적인 일이기도 하니까요. 교수님의 가장 큰 아픔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럴 때마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어떤 좌우명이 있었을 것인데 이에 대한 좋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최동호: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 말을 되새깁니다. 이 말을 풀이하여 ‘인사를 다하지 못했는데 어찌 천명을 기다리랴.’고 하는 것이 저의 해석입니다. 항상 부족한 제 자신을 반성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너무 멀고 크게 느껴진다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말도 가까이서 언제나 마음속에 새기는 말입니다. 날로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생의 기쁨도 생기지 않습니다. 봄이 돌아와 새순이 돋은 것보다 더 경이적인 일은 없습니다. 생에 대한 새로운 동력이 거기서 나옵니다. 저는 지금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남오: 교수님은 연세에 비해 상당한 동안이십니다. 문단에서는 영원한 청년이란 별칭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특별한 건강 유지 비결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지요.

 

최동호: 비교적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합니다. 일정한 한계를 넘지 않고 정도를 지키려 하는 것이 일상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많은 일을 다양하게 하는 것 같이 오해되기도 하지만 오직 하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학 진학 시 상과나 법과를 지망하지 않고 처음 문학에 뜻을 두었을 때 마음먹었던 것처럼 시와 관련된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 저기 한눈을 팔 여가가 없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초심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초심처럼 지키기 어려운 것이 달리 또 있을까요. 매 순간이 그러하고 평생을 다시 돌아보아도 그러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후회되어 감추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백남오: 앞으로 꼭 하시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 교수님의 꿈이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최동호: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래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저 스스로 긍정할 수 있도록 사는 것이 저의 일차적인 꿈입니다. 물론 한 가지 더 말한다면 시를 목표로 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는 시를 한 편 쓰는 것도 하나의 꿈이 될 것입니다. 제 고향 수원에 정착하여 후진들을 위해 고향을 문학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백남오: 긴 시간 말씀 고맙습니다. 대담을 하는 동안 내내 행복했습니다. 늘 건강하시어 마지막 남은 소망의 꿈들을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교수님의 꿈이야말로 인류가 이루어야 할 유토피아라 믿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최동호/ 시인, 문학평론가. 1948년 수원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시집『황사바람』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되었다.

시집으로『아침책상』『딱따구리는 어디에 숨어있는가』『공놀이하는 달마』『불꽃 비단벌레』『얼음 얼굴』『수원 남문 언덕』이 있으며, 저서로는『현대시의 정신사』『불확정시대의 문학』『한국현대시의 의식현상학적 연구』『평정의 시학을 위하여』『삶의 깊이와 시적상상』 『하나의 도에 이르는 시학』『디지털 문화와 생태시학』『현대시사의 감각』『진흙천국의 시적주술』등이 있다.

시 부문 문학상으로 현대불교문학상, 고산 윤선도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대산문학상, 유심작품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사)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경남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백남오/ 수필가. 2004년《서정시학》등단. 수필집『지리산 황금능선의 봄』『지리산 빗점골의 가을』. 2011년 수필「겨울밤 세석에서」전문이『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고, 창비『국어교과서 시리즈』작품선정. 2013년『고등학교 문학』교과서(지학사) 공동저자. 마산대 ‘백남오수필창작교실’지도교수.《경남문학》주간.

 

<월간 《수필과 비평》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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