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열전] 김용위 야구부 감독
[명장열전] 김용위 야구부 감독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5.02.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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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야구 열정 끌어내는 게 감독 역할이죠"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경남대 야구부는 대학 야구에서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전국 대회에 출전하면 다른 팀의 '승점 자판기'로 불리기 일쑤였고, 졸업생이 프로 유니폼을 입는다는 건 꿈꾸기도 어려웠다.

  주위에서는 조만간 팀이 해체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그즈음 김용위 감독이 경남대 야구부 지휘봉을 잡았다. 모교 출신이 사령탑이 된 첫 번째 케이스였다.

  김 감독은 이를 악물고 팀에만 집중했다. 집에는 아빠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두 아들이 있었지만, 그는 집보다 숙소에서 머물며 팀을 다잡는 데 모든 공을 쏟았다. 팀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1년에 출전한 모든 대회를 통틀어 '2승'에 불과하던 팀 성적이 각종 전국 대회에서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한 수도권 팀과 맞붙어도 주눅이 들지 않을 만큼 급성장했다. 그동안 열외로 취급하던 프로 스카우트들도 경남대 야구부에 조금씩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을 기회로 바꾼 김 감독의 필살기가 궁금했다.

  1월의 끝자락 함안 칠서야구장에서 동계훈련이 한창인 김용위 감독을 만났다.

  인천이 고향인 김 감독은 동산고, 경남대를 거쳐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프로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있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프로행을 택하면 아마추어 지도자를 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1999년 경남대 야구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에서 뛰는 (류)현진이가 고교 후배"라며 "제대로 얼굴도 본 적 없는 까마득한 후배지만, 그래도 모교 출신이 승승장구하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1999년 코치로 지도자의 첫 발을 내디딘 김 감독은 2007년 경남대 야구부 정식 감독으로 부임했다. 올해로 지도자 햇수만 15년 차 베테랑이다.

  그는 최근 경남대의 상승세에 대해 "배고픈 선수, 부족한 선수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이라며 "나 역시도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잘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놀라워했다.

  경남대는 최근 4년간 13명의 프로 선수를 배출했다. 2013년도 신인지명회의에서는 박으뜸과 권희동, 임제우(이상 NC), 이석재(SK)가 프로 지명을 받았고, 2014년에도 박재윤(삼성), 홍지운(NC), 류현철(KIA) 등 3명이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소위 메이저 대학도 아닌 지역의 약체가 거둔 성과 치고는 놀라운 성적이다.

  야구는 고졸 출신이 프로로 직행하는 몇 안 되는 종목이다. 고교 졸업생 가운데 상위 랭커는 대학 진학 대신 프로를 선택하고, 나머지 선수들도 수도권 소재 대학, 그다음은 영남대, 경성대, 동의대 순이다. 경남대는 그 이후에 선수를 받다 보니 우수 자원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김 감독도 이런 한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는 "좋은 선수는 다 서울로 가려고 해 스카우트하기 어렵다. 우리 팀에서 받는 선수는 야구를 하면서 한 번은 좌절감을 맛본 선수가 대부분"이라며 "이들을 어루만져 동기를 심어주고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전해주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데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 바로 야구에 대한 간절함이다.

  그는 "지금은 유명 선수가 된 NC 권희동도 대학 시절에는 선수와 목회자의 길을 놓고 방황했다"면서 "야구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프로에서 스타 플레이어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부임 이후 배고픈 선수, 부족한 선수, 좌절한 선수 편에 서서 선수들을 어루만졌다.

  격의 없는 대화로 늘 선수들 편에 다가섰다. 감독이 먼저 다가서니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김 감독은 "처음 팀을 맡았을 때는 센 팀과 맞붙게 되면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일찍 마치고 휴가나 가자'며 콜드게임을 지시하는 때도 있었다"면서 "지금은 어느 팀과 맞붙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게 팀의 강점이 됐다"고 말했다.

  15년 차 베테랑 지도자인 그는 항상 '투지'와 '열정'을 강조한다.

  실력이 떨어지더라도 하고자 하는 의욕만 있다면 그는 스스럼없이 그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한다.

  김 감독의 이런 지도철학은 선수들에게도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

  연습에서부터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이 늘어났고, 연습경기에서 져도 웃던 예전의 모습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선수단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성적도 상승했다. 대통령기 대학야구 결승(2003년)을 비롯해 각종 전국대회 4강은 수시로 진입했고, 대학리그에서도 결선리그 단골손님으로 급성장했다. 팀의 성적이 좋아지면서 프로팀들의 스카우트들도 경남대를 지목하기 시작했다. 김 감독을 만나 이날도 LG 트윈스의 스카우트가 경남대 경기를 지켜보고자 함안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열심히 운동해도 어차피 프로에 가지 못한다는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선수들이 최근 몇 년간 함께 운동하던 선배가 프로팀에 가는 걸 보면서 느끼는 게 많은 모양"이라며 "물론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전체적인 팀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1982년 창단한 경남대 야구부는 1989년 전국체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 기록이다. 각종 대학 대회에서 우승 가시권까지는 도달했지만, 우승은 아직 해본 적이 없다.

  그는 "희동이와 으뜸이가 주축이던 2012년에 우승을 노려봤는데, 이런저런 부상 등에 시달리며 결국 실패했다"면서 "올해는 에이스 이민준이 제 역할만 해준다면 26년 만에 다시 한 번 정상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5년 2월 2일(월)자 16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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