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1.21 11:2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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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 까마귀보다 시민을 먼저 생각할 때

  지난 주말 자주 찾아가는 고성 안국사에서 철새 독수리를 보았습니다. 안국사가 자리 잡은 천황산 하늘 위로 긴 날개를 펼치고 선회하는 모습을 보며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보여주는 품새가 늠름했습니다. 독수리는 우리나라에서 귀한 맹금이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철에 따라 날아오고 날아가는 새를 철새라고 합니다. 후조(候鳥)라고도 합니다. 제대로 철새구경을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김남조 시인의 시 ‘후조’를 외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을 나의 누구라고 말하리/나를 누구라고 당신은 말하리/마주 불러볼 정다운 이름도 없이/잠시 만난 우리/이제 오랜 이별 앞에 섰다’로 시작되는 시였습니다.

  철새는 그렇듯 애틋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겨울철새(winter visitor)일 때는 그 마음에 더욱 짠해집니다. 가을에 찾아와서 겨울을 나고 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어린 기러기며 오리, 개똥지빠귀들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그 어린 나래로 수천㎞를 날아오고 날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무슨 원죄가 있어 그렇게 오가며 겨울과 여름을 나야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우리 울산에도 대규모 철새무리가 찾아옵니다. 몽골 북부와 시베리아 동부에서 떼까마귀, 갈까마귀 등 5만여 마리가 날아와 태화강철새공원 대숲에서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이들이 울산을 월동지로 삼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저에게는 웅장하기보다는 때로는 섬뜩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까마귀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까마귀는 효조(孝鳥)라고 부르는 배울 것이 많은 새입니다. 고구려의 용맹을 상징하는 삼족오도 까마귀이고, 까마귀들이 날아온 시베리아의 투크치족과 코랴크족은 까마귀를 창세신(創世神)으로 대접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까마귀들이 월동하는 지역에 시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나 ‘환경’에서 제일 먼저 사람을 생각해야합니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주민들의 고충이 해결될 때 까마귀와 사람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까마귀의 배설물과 깃털도 문제이지만 조류인플루엔자란 복병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울산시는 당장 관광 상품을 만들려 호들갑을 떠는데 만일의 사태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을 질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생태나 환경은 ‘이벤트’가 아닙니다. 전임시장의 태화강 이벤트의 현 주소는 어떠한 지를 궁금해 하고 걱정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것을 행정은 생각해야 합니다. 천수만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가까운 부산의 낙동강 하구나 경남 창녕의 우포늪과 비교할 때 서둘러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어느 핸가 조류인플루엔자가 터졌을 때 우포늪 일대가 순식간에 위험지구로 변해버려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떨던 모습이 아직 생생합니다.

  철새도래지가 아름다운 것은 많은 철새들의 다양한 군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가창오리의 군무는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수십 만 마리가 제 머리 위에서 군무를 펼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뫼비우스 띠 같은 매직이었습니다. 저는 태화강 까마귀 군무에서 아무런 감동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까마귀와 가창오리의 비행속도와 몸의 날렵함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겠지만 그걸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어 울산으로 청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특히 흐린 날 전깃줄을 점령한 까마귀 떼는 울산의 이미지에 결코 가점이 될 수 없습니다.

  새가 아름다운 것은 날개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날기 때문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1963)에서 느끼던 공포와 스릴러가 생각납니다. 통영 먼 바다의 괭이갈매기 섬 홍도(鴻島)에서 갈매기가 사람에게 행사하던 공포가 생각납니다. 울산 까마귀들의 군무에서 말입니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4년 11월 21일(금)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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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 2014-11-27 10:23:20
정일근형님의 글을 보고 낙동강 명지 부근의 장황한 철새들의 날아가는 것이 생각납니다 형님! 잘 계십니까? 저 성수입니다 함께 지내던 때가 생각나는 군요 언제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