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시론] 김동엽 연구교수
[한겨레 시론] 김동엽 연구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1.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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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의 간절한 염원

 
  애기봉 등탑이 철거되었다. 오래되어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새로운 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철거를 두고 대통령이 호통을 쳤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회적 관심을 넘어 새로운 남남 갈등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김포시는 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하면서 더 높은 관망대를 건설할 예정이고, 국방부는 대북 심리전을 위한 대형 전광판 설치를 검토중이라고 한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김포 강변의 작은 언덕에 애기봉이란 이름이 붙여진 데에는 나름 애틋한 사연이 숨어 있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애첩 ‘애기’(愛妓)와 한양으로 피난을 내려오다 평안감사는 오랑캐에 잡혀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너게 되었다. ‘애기’는 매일 북쪽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병들어 죽으며 북쪽에 계신 임이 잘 보이는 봉우리에 묻어 달라 했다고 한다. ‘애기’란 이름엔 바로 이별의 아픔 속에 임을 그리는 애절함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애기’의 마음은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과 이산가족의 아픔과 함께 북한 동포를 향한 우리 국민들의 염원과도 닮아 있다. 이 때문에 애기봉 등탑의 불빛 역시 실향민들이 북한에 보내는 마음의 편지이자 북한 동포를 향한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로 여겨졌다. 관망대를 좀더 높이 만들려는 것도 한 치라도 더 멀리 고향 땅 가까이 북쪽을 보고 싶어 하는 실향민의 간절함 때문이고, 등탑의 높이만큼 북한 동포를 향한 우리의 소망이 북녘땅 더 멀리 더 깊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이런 우리의 진심을 북한은 믿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를 북한만의 책임이라고 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애기봉이 가진 진정한 의미와 달리 등탑을 대북 심리전의 상징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옆집에 사는 이웃과 서로 믿고 살자고 하면서 담벼락 위에 서서 이웃의 집을 계속 내려다본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이웃과는 다른 종교적 형상물을 담 위에 잔뜩 장식해 놓았다고 해 보자. 옆집이 우리의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옆집 북한이 어떻게 생각하든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북한과의 신뢰프로세스란 그저 말뿐이고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또 이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엠제트(DMZ) 평화공원이란 기본적으로 남과 북이 함께하는 공간이다. 디엠제트에 평화공원을 만들자고 하면서 다른 한쪽에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상징조형물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모순이다. 북한이 디엠제트 평화공원에 북한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우리가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북한과의 신뢰를 이야기하고 디엠제트 평화공원을 만들자고 이야기하면서 북한 담을 넘겨다보고 담장 위로 솟아오른 시설물만 늘리겠다는 것은 오히려 애기봉에 담긴 우리의 순수한 의도와 간절한 염원을 퇴색시켜 버리는 것이다. 무작정 시설물이나 상징조형물을 세우지 말자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애기의 염원’이란 진솔한 울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과거 북한의 인민들 중 애기봉 등탑에 담긴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또 그걸 볼 수 있었던 북한 군인들이 우리의 소망처럼 감동을 받았을지 궁금하다. 북한군 눈에 확 들어오는 솟아오른 관망대와 반짝이는 등탑보다 어느 날 문득 북한군이 쌍안경으로 애기봉 잔디밭에 소풍 나온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을 보고 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말엔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애기봉으로 가을 소풍을 가야 할까 보다.

<위 글은 교수신문 2014년 11월 4일(화)자 2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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