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시론] 이수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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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0.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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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가 된 전작권 전환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한·미 간의 합의였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연기하였다. 우려해온 일이 현실이 되었고, 이로써 한국 정부의 전작권 전환정책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전작권은 2007년 한·미 간의 엄중한 합의를 통해 2012년 4월17일자로 우리 합참으로 전환될 예정이었다. 이런 중대한 동맹국과의 합의를 이명박 정부가 변화된 안보 상황과 우리 군의 준비 부족을 빌미로 삼아 연기해버렸다. 전작권 전환정책이 심각하게 꼬이는 단초가 되었다. 당시 재연기 합의는 전작권을 2015년 말에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그 합의를 박근혜 정부가 다시 뒤집고 재연기 합의를 한 것이다.

  전작권 전환에 대해 미온적 생각을 갖게 되면 언제든지 제기할 근거가 안보상황 변화와 우리 군의 준비 부족이다.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의 안보상황은 매우 유동적이어서 바람 잘 날이 없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의지가 없으면 전작권 전환을 이루기 어렵게 되어 있다. 원칙과 신뢰를 무척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이런 결정을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책을 일관되게 펼칠 수 있겠는가.

  국가 간의 중대한 합의가 이같이 시도 때도 없이 파기된다면 신뢰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정부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되짚어보면 신뢰는 차치하고 수치심이 앞선다. “내 방위를 나 자신이 당당하게 책임지고 하겠다. 좀 부족하니 미국이 지원해달라.” 이렇게 해야 미국이 한국을 존중해주고 진정한 파트너십을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지금 우리 정부와 군수뇌부의 태도는 그런 자신감, 책임의식과는 거리가 멀다.

  전작권 문제는 주권국가로서 우리의 면모를 완성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한국의 대외전략이나 동북아 외교를 펼침에 있어 다각적인 파장을 갖는 이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북한과 군사회담을 할 때, 중국과 전략대화를 할 때, 전작권을 우리가 갖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전작권을 보유하고 있을 때 우리가 고유한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펼칠 수 있다. 북한당국도 우리 군이 전작권을 갖고 있을 때 함부로 도발적 군사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 조치로서 한국의 보수가 보수답게 해결해야 할 이슈다.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전환 연기를 두고 마치 치적이나 되는 양 행세하지만 따지고 보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저간의 흐름을 살펴보면 이번 재연기도 우리 정부가 주도한 모양이다. 전작권 전환정책은 여러 부수 하위 조치들과 맞물려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간에 한·미 간 전작권 전환 준비가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전작권 전환을 염두에 두고 매년 해온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게다가 방위비 분담금 문제, 한·미연합사 서울 잔류 문제, 경기 북부의 미군 부대 이전 문제 등등이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그간 해온 준비와 노력을 무산시킬 것이다.

  그리고 동북아의 뜨거운 감자라 할 수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의 한국 배치 이슈가 있다. 여러 분석가들이 이미 사드와 전작권 재연기가 한 패키지로 묶여 있다고 지적해왔다. 즉, 미국은 전작권 전환을 재연기해주고 우리는 사드 배치를 받아들이는 패키지란 말이다. 우리 국방부가 극구 부인함에도 미국 고위관리들이 사드 배치 부지 조사를 했다고 공언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은 연기하고 미국의 동북아 군사 전략의 일환인 사드 배치를 수용하는 것은 추후 한국의 입지라는 차원에서 최악의 조합이다.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가고, 중국과 어떻게 대립각을 피해갈지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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