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0.22 0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通)인가? 불통(不通)인가?

  늦은 밤, 어느 커피숍에서 보았습니다.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세 명이 한 자리에 앉아 식어버린 커피 잔을 앞에 놓고 각자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흔한 모습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이 있는 풍속도’였지만 저는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은 같은 원탁에 앉아 서로에게 귀를 막고 스마트폰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건 분명히 단절이었습니다.

  그 풍경이 소통인지 불통인지를 강의실에서 대학생들에게 던져봤습니다. 저는 당연히 불통의 답이 나올 것을 예상했지만 젊은 대학생들은 소통에 더 많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세 사람은 불통이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더 많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소통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통은 현대사회의 ‘피돌기’여서 소통이 되지 않으면 곳곳에서 ‘혈액순환장애’가 일어납니다. 불통은 곧 단절을 의미하며 단절은 소외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통즉불통(通卽不痛)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의보감에 전하는 말로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소통도 사람의 몸과 같아서 통하지 않으면 병이 나고 통하면 즐겁습니다.

  당신에게 묻습니다. 스마트폰은 통(通)입니까? 불통(不通)입니까?

  언젠가 미국 뉴욕타임스에서 ‘폰 스택 게임(phone stack game)’이 유행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식당에서 각자 스마트폰을 꺼내 테이블 한복판에 쌓아놓고 있다 계산 전에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보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게임이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다 자기 스마트폰 만지면 밥값을 다 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미 스마트폰이 우리, 즉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조사에 의하면 국민 평균 하루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4시간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을 18~24세에서 98%가 사용하고, 25~34세에서 95%가 사용한다고 합니다. 몇 해 전 대학에서 교양강의를 하다 100여 명 학생들의 스마트폰 문제 때문에 강의가 중단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극약처분으로 스마트폰 사용 적발 시 점수 -5점을 내걸자 다소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물론 스마트폰은 우리 시대를 광정(匡正)시키는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인이나 공직자, 기업인, 연예인까지 스마트폰에서 쏟아지는 SNS의 힘에 바짝 긴장하며 사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는 77.4%’의 스마트폰 사용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스마트폰을 끄고 시월의 밤하늘 별을 켜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별을 보며 가족들과 친구들과 잃어버린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언제 지인들과 ‘폰 스택 게임’을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 대화의 시간에 스마트폰을 잠시 추방해 놓고 싶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불통의 빈터에 소통의 나무가 심어지길 바랍니다. 소통은 그 나무를 함께 키우며 숲을 만드는 일입니다. 건강한 소통의 숲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이 아닌 나부터 변해야 할 것입니다. 소통은 속도가 아니라 대화입니다. 시월은 문화의 달이라고 합니다. 소통이 없는 문화가 무슨 값어치를 가지겠습니다. 저부터 폰을 끄고 오래 불통했던 얼굴들을 마주보며 따뜻한 가을 국화차 한 잔을 권하고 싶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