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고] 윤진기 교수
[한국일보 기고] 윤진기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0.0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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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진흥기금을 조성할 때

  우리 사회의 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위로,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적게는 82조원, 많게는 246조원에 이르고 있다. 갈등으로 인한 소송사건만 해도 2012년 제1심 법원에 접수된 본안사건이 157만여건으로 판사 1인이 연간 1,2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분량이다. 제1심 법원의 소송사건이 이렇게 많으니 상고사건 수도 2003년 1만9,290여건에서 계속 증가해 2010년 이후에는 매년 3만6,000건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인의 대법관이 1인당 연간 3,00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상고심 제도 개선 공청회를 열고 상고법원(上告法院) 설치를 제안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대법원 안에 의하면 상고법원의 각 재판부는 대법원 소부처럼 4명의 법관으로 구성해 법관 4명의 의견이 모두 일치할 때만 선고를 내릴 수 있고, 의견이 엇갈리거나 기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되는 결론이 나오면 사건을 대법원으로 이송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법원 판결에서도 법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상고법원의 사건은 상당수가 그대로 대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상고법원 제도의 도입은 사실상 4심제를 채택하는 결과가 돼 국민들의 분쟁해결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국가의 분쟁해결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다른 법률 선진국에서는 상고사건을 허가제로 운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ㆍADR)를 적극 활용, 분쟁을 해결함으로써 법원의 부담을 경감시키고, 아울러 효율적인 분쟁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여러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 중에서 중재는 민간 전문가들이 중재인으로 참가해 단심으로 사안을 종결 짓고, 그 결과인 중재판정은 대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져 공정성과 신속성, 경제성을 모두 갖췄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중재를 활성화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과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핵심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중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재진흥기금을 만들어 중재제도의 확산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우선 중재진흥기금 관련 법을 제정하고 재원을 마련한 뒤 그 운용 수익으로 중재 및 기타 대체적 분쟁해결 사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면 향후 수 세기 동안 갈등 해결과 사회 안정에 커다란 공헌을 할 것이다. 특히 중재와 경제발전은 선순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중재제도의 활성화를 통해 국가의 경제발전에 크게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된다.

  확보된 중재진흥기금은 중재진흥을 위한 조사 및 연구 지원, 중재시설 확충을 위한 지원, 유능한 중재인 육성을 위한 지원, 중재 활성화를 위한 대국민 홍보를 위한 지원, 중소기업의 중재이용 지원, 중재를 비롯한 각종 대체적 분쟁해결제도의 정착 및 보급을 위한 지원, 중재의 국제경쟁력 강화 및 국제중재기구와의 교류 지원, 기타 중재진흥을 위해 필요한 사업 등에 사용한다.

  상고법원이 설치될 경우 연간 예산은 대략 2,000억원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상고법원의 1년 반 정도의 예산인 3,000억원 정도의 중재진흥기금만 마련하면 분쟁해결의 백년대계를 새롭게 새울 수 있고, 우리나라를 중재대국으로 만들 수 있으며, 대외적으로 분쟁해결에 대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중재는 사적인 분쟁을 사적 자치에 의해 제3자에게 부탁해 해결하는 제도다. 중재의 가장 큰 미덕은 분쟁과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합리적인 정신과 자정(自淨) 능력을 개인과 시민사회에 뿌리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중재진흥기금을 조성함으로써 이런 귀중한 자산을 역사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

<위 글은 한국일보 2014년 10월 8일(수)자 2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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