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10.06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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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능동적 대북정책을 고민할 때

 
  뜻밖이었다. 북한 실세 3인방이 인천을 찾아온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12시간의 짧은 체류기간이었지만 북측 대남 실세와 우리 대북라인 실세가 직접 마주하며 오찬 회담을 한 것만으로도 꽉 막힌 남북관계에는 일단 숨통이 트일 만하다. 더욱이 우리의 요구에 묵묵부답이던 북이 고위급 접촉에 합의함으로써 이제 남북관계는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게 되었다.

  뜻밖인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좀처럼 남쪽에 올 것 같지 않던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군복을 입고 직접 내려온 것이다. 방남(訪南)의 명분이었던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과 선수단 격려라는 면에서는 국가체육지도위원장으로 선출된 최용해가 내려오는 것으로 족할 일이다. 더불어 방남의 실제 목적이었던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이라는 면에서도 대남전략의 총괄 책임자인 김양건 비서가 내려온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불리는 군부 실세인 총정치국장이 단장 자격으로 내려온 것은 분명 뜻밖이다.

  최측근을 내려보냄으로써 남북관계를 풀어 보겠다는 김정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시키려는 의도다. 이례적으로 전용기와 경호원을 내려보낸 것도 김정은의 의지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다. 군부를 장악하는 총정치국장이 평양을 비우게 함으로써 김정은의 건강이상설을 잠재우고 북한 권력 내부의 안정성을 과시하려는 전술적 목적도 포함되었다.

  뜻밖인 것은 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만날 용의가 있었음에도 북측 대표단이 시간 부족을 이유로 사실상 거절한 모습은 기존의 관례에 비춰볼 때 정말 뜻밖이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특사조문단으로 내려온 김기남 비서와 김양건 부장은 하루를 묵어가면서까지 이명박 대통령 면담을 강하게 요구했고 관철시켰다. 김정일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이명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청와대 면담을 거부한 뜻밖의 모습은 김정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할 의미 있는 메시지가 없었고 특히 정상회담 카드는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남북관계 개선 의지는 이미 북이 수차례 밝혀왔고 이번 아시안게임 참가 결정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라고 강조해 왔다. 폐막식 참가를 명분으로 실세 3인방이 내려옴으로써 북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남북관계 개선의 정당성과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외교적 고립 탈피나 경제적 지원의 필요성 때문에 북이 고개 숙이고 내려왔다는 일부 평가는 잘못된 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동의하면서도 김정은은 정상회담이라는 기존의 방식을 아직 원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평가일 것이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전혀 없이 이명박 정부와 덜컥 정상회담 카드로 접근했다가 일을 그르쳤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재개될 고위급 접촉의 성과와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 여부를 봐가면서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카드는 본격 고민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이 보여준 대남 전략은 매우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것이었다.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와 재개 결정에서도 북은 공세적이었다. 올 들어 북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잇따른 국방위 제안을 통해 남북대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면서도 청와대와 국방위의 고위급 접촉을 북이 먼저 제안해 훈련 기간 중에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하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을 결정하면서 남북관계에서 적극적 주도권을 행사하려 했다.

  이번 실세 3인방 방남도 공세적인 대남전략의 일환으로 해석 가능하다. 서로 엇박자를 내면서 손바닥이 마주치지 못하던 남북관계를 북은 이번 3인방 방남 이벤트를 통해 풀어냈다. 꽉 막힌 남북관계를 북이 적극적·주도적으로 풀어내는 모양새다. 폐막식 전날 갑작스레 실세를 내려보내겠다고 통보하고 다음 날 내려와서 짧은 시간 동안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마련하고 남북대화 재개를 합의하고 올라갔다. 긴장을 고조시킬 때도 공세적이었던 북이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푸는 것도 공세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북의 공세적 대남전략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모양새다. 신뢰 프로세스를 위해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북을 이끌어내지 못하게 되면서 긴장 고조도 관계개선도 매번 우리는 끌려다니고 있다.

  교착상태의 남북관계가 대화 재개의 방향으로 물꼬를 트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어렵게 재개된 고위급 접촉이 또다시 신경전과 기싸움으로 정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드레스덴 선언과 북한의 국방위 제안이 모두 테이블에서 논의되면 될 것이다.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고 화해협력이 진전되어야만 우리의 대북 주도권도 확보될 수 있다. 수동적·반응적 대북정책이 아니라 능동적·적극적인 대북정책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북에 공세적일 수 있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4년 10월 6일(월)자 2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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