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서울신문 칼럼] 최동호 석좌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9.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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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

  최근 대한민국을 휩쓴 열풍의 주인공은 이순신 장군과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서로 다른 직함을 가진 이 두 분에게 한국인이 열광하는 것은 왜일까. 약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감싸고 그들의 마음과 깊이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100만 인파가 운집한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으로 거행된 시복식은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광장에 운집한 신도들은 물론 전국 방방곡곡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한 사람들 모두 엄숙하고 장엄한 이 의식의 진행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프란치스코는 ‘마음속에 한반도의 평화를 깊게 간직하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용서를 준비한 사람만이 화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마음속에 용서가 없는데 어떻게 화해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실천하기 어려운 말이다. 말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희망의 실마리도 찾아주었다. ‘한 형제로서 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게 바로 희망입니다’라고 했다. 북한은 교황이 방문한 바로 그날 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반도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교황이 말만 하는 분만이 아니라 힘없고 약한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짧은 방문 기간 동안에도 교황은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 일본군 위안부, 아시아 청소년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며 평화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만한 사제들에 대해서는 엄격했지만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낌없는 관심을 보여 주었다. 장애아나 뇌성마비환자 등을 위한 기도는 예수의 대행자로서 교황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준 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낮은 데로 임한 종교지도자의 성스러운 모습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사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벌써 1600만명을 넘어서서 1700만명을 향하고 있다고 하니 적어도 한국인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초유의 기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마도 오늘의 한국인에게 가장 절실한 것을 이 영화가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구성은 엉성하다. 볼거리가 좀 있다고는 하더라도 치밀한 짜임이나 밀도로 인해 국민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빛나는 것은 이순신으로 분한 최민식의 내면 연기다. 압도적 다수인 왜군과의 결전을 앞둔 이순신의 고뇌가 그를 통해 빛나고 있다. 전선은 불타고 장졸은 도망가고 백성들은 피난에 급급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명량의 물 흐름을 관찰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겨우 12척의 배로 일본 수군 300여척을 어떻게 격파할 수 있었겠는가. 이는 그를 믿고 따르는 백성들이 있었고 약점을 강점으로 뒤바꾸는 용병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좁은 길목에서 적군을 맞이한다고 하지만 그의 배후에 100여척의 피난민 선박이 학처럼 옹위하지 않았다면 승리할 수 없는 전투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자에게는 아낌없는 포상을 내렸지만 적이 무서워 도망치는 장졸에게는 추상같은 엄벌을 가해 민심을 하나로 만든 것이 이순신의 리더십이다.

  민심과 소통하여 국가의 기율을 바로 세우는 것이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게 최우선의 과제다. 가장 낮은 곳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순신 장군은 서로 통한다. ‘명량’ 열풍의 배면에는 세월호 사건이 있다. 한국인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 세월호 사건은 발발 이후 4개월이 넘어도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누구도 결정적으로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한국인에게 깊은 치유의 말씀과 감명을 남기고 떠난 교황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 시복식을 거행한 바로 그 광화문 광장을 지금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다. 진정으로 민심과 소통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지도자만이 민족 통일의 대업을 이룰 것이라고 400년 만에 부활한 한국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증언하고 있다.

<위 글은 서울신문 2014년 9월 1일(월)자 3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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