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교수, 소설 '맥도날드 …'
전경린 교수, 소설 '맥도날드 …'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8.2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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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휑한 현대인, 슬퍼할 기운도 잃다

  소설가 전경린(52)은 “공허하고 고독한 현대인의 삶, 슬픔조차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한 모습을 그냥 한번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 황순원문학상 후보에 오른 단편 ‘맥도날드 멜랑콜리아’(자음과모음 2013년 겨울호)를 두고서다. 그는 “모든 소설 속엔 시대적 정서, 시대적 풍경이 담겨있지 않냐”고 했다. 그가 담아낸 우리 시대 현재 상황은 ‘멜랑콜리아’다. 어떤 의지도, 희망도 발붙일 여지가 없는 우울증 상태다.

  주인공 나정은 이혼 후 혼자 산다. 5년간 등산복 매장을 운영했지만 매출이 줄어 문을 닫고 1년째 쉬는 중이다. 일주일에 두어번 뱃속에 구덩이가 파인 듯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가 찾아올 때 맥도날드로 간다. 맥도날드는 누구나 쉽게 찾아가지만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는 도시의 섬이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 기주. 그 역시 무직이고 혼자 산다. 수입 앤티크 가구점을 마지막으로, 물려받은 상가를 완전히 날려버리기까지 10여 년 동안 몇 가지 사업을 했다. 이젠 하루종일 카페를 전전하며 신문 보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에겐 어떤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다. 집도 있고, 핸드폰도 있고, 대학 졸업장도 있지만 이들의 삶을 붙잡는 힘은 어디에도 없다. 사랑과 희망 따위만 사라진 게 아니다. 분노나 슬픔, 심지어 좌절을 느낄 힘도 없다. 극도의 무기력함. 생명력을 잃어버린 삶이다.

  “이런 개인들이 우리 곁에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거대자본과의 경쟁에서 낙오한 개인들이 부유물처럼 떠돌고 있는 거죠. ‘전락의 시대’에요.”

  전경린은 그 위태로운 상황을 펼쳐놓을 공간으로 맥도날드를 골랐다. “세상의 바깥 벽 허공에 떠있는 옥외 계단 같은 곳”이어서다. 그는 “현대인의 상태는 슬픔이 아니라 우울”이라고 했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슬픔만 해도 건강한 감정상태다. 슬픔을 통과한 뒤엔 일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힘이 생긴다. 하지만 우울은 감정마저 휘발돼버린, 끝도 바닥도 없는 구덩이다. 그는 “우울은 개인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회가 바뀌어야 해결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맥도날드 …’는 적나라한 고발소설이다. 문학평론가 권희철씨는 “오늘날 사회 현상을 뚜렷하게 볼 수 있도록 ‘렌즈’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소설의 끝은 잔인하다. 나정과 기주, 두 사람이 간신히 서로 소통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래서 나정이 “또다시 몸 어딘가에 희망이 꿈틀거리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그 이물스러운 희망의 싹마저 짓밟히는 사고를 당한다. 하지만 나정은 여전히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사람도, 감정도, 모두 사물화돼버린 경지다.

  ‘맥도날드 …’에 대해 전경린은 “내 삶과 거리를 유지하며 쓴 첫 소설”이라고 말했다. 2010년 모교인 경남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그는 작품과 삶이 같이 얽혀있는 전업작가 생활을 벗어났다. 그래서인지 ‘맥도날드 …’엔 그의 기존 작품 속에 단골로 등장했던 ‘일탈을 꿈꾸는 여성’이 없다. 대신 불안하게 흔들리는 인생이 놓였다. 등단 20년째. ‘전경린 문학 2기’의 출발로 봐도 좋을까. 그는 “지금까지의 작품이 현실을 부정하고 뭔가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젠 이 시대 현실에서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4년 8월 20일(수)자 27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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