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대서특필
중앙일보,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대서특필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8.1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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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과 9년째 공동 학술활동 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 외교 안보 싱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 하먼 소장 "미국·중국이 친구 돼야 한국 등 우방 모두에 윈윈"

  동북아가 긴장의 연속이다. 한·일 관계에선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계속되고 있고, 중국의 부상은 집단적 자위권을 내세운 일본의 견제로 이어지고 있다. 관건은 미국의 속내다. 본지는 이를 파악하기 위해 워싱턴의 4대 핵심 싱크탱크를 지휘하는 수장들을 릴레이 인터뷰했다. 미국의 지구촌 운영 전략을 구상하는 우드로윌슨센터·헤리티지재단·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브루킹스연구소 등 중도·보수·진보를 망라했다. 박진 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이 본지의 객원 칼럼니스트로 참여해 대담했다.

  우드로윌슨센터의 제인 하먼(69) 소장은 미국 민주당의 9선 하원의원 출신이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으로 빌 클린턴 정부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정보·안보 분야를 깊숙하게 자문해 왔다. 민주당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통해 재집권할 경우 하먼 소장이 외교·정보 부처의 수장을 맡으리라는 관측도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에서 나온다.

  그런 하먼 소장이 동북아 기상도를 좌우할 미국과 중국 관계에 대해 협력론을 피력했다. 하먼 소장은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은 협력을 통해서 서로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며 “미·중 간 긍정적인 관계는 미국·중국은 물론 한국과 같은 지역 내 우방에 모두 윈·윈(win·win)”이라고 강조했다. 하먼 소장은 “무엇보다 경제적 측면에서 협력 관계로 가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먼 소장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중동은 물론 동중국해·남중국해 등에서도 우발적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럴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중 관계의 진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에 대해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오바마 대통령이 ‘피벗’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대단히 아쉽다. 이 표현에 유럽과 중동은 물론이고 중국도 불편해했다. 국제 관계에선 어떤 언어를 쓰는가가 중요하다. 피벗보다는 ‘재균형’(rebalance)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아시아에서 미국이 역할을 새롭게 정립한다는 취지에서다.”

 -아시아에선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관계의 추이가 관심사다.

 “미국은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의 우방국들과 더 좋은 경제적 파트너가 돼야 한다. 내 생각에는 ‘협력’이 미래의 선택이 돼야 한다. 개인적으로 조언한다면 ‘친구가 돼라’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의 주요 교역국인 데다 북한 문제를 놓고 협력할 상대다. 한국 입장에선 중국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해졌다. 한·중 협력 확대가 한·미동맹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7월 평양에 앞서 서울을 찾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지금 시 주석이 북한에 대해서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북한은 대단히 미숙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이 튼튼한 관계를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는 미국에도 이익이 된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유대는 엄청나게 강력하다. 한·미는 대단히 굳건한 동맹 관계다.”

 -최근 한·일 관계는 위안부 문제 때문에 갈등이 계속된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성노예를 이른바 ‘위안부’라고 부르며 한국인들을 어떻게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잘 알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정말로 불쾌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표현했던 그대로 끔찍하고 지독하다. 미국 의회의 많은 이도 공감하고 있다. 에드 로이스(공화당·외교위원장) 하원의원은 캘리포니아의 위안부 소녀상을 찾기도 했다. 양국 간 긴장을 해소할 방안이 필요하다. 해결 방안이 어떻게 나오건 분명한 점은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 측이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기를 바라고 있다.”

 -한·미·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지만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로 삼국 협력이 저해되고 있다. 중국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미국은 한·일 양국 모두의 친구다. 그런데 한·일 간 긴장을 놓고 중국이 동중국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메시지로 활용하고 있는 게 불행한 일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자.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발발했는지에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됐다. 이런 우발적 사건이 벌어질 가능성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 그게 내가 한·중 관계가 건전하게 발전돼야 한다고 바라는 이유 중 하나다.”

 -독일의 경우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했다. 이는 유럽 통합의 초석이 됐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수용소를 박물관으로 만들었고 (유대인을) 어떻게 노예처럼 다뤘는지 사진 등으로 남겼다. 독일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오스트리아는 그렇지 않았다. 좀 복잡한 문제인데 국가적 자존심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그러나 중요한 점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정의감이 있어야 하고, 반목하는 양국이 과잉 대응을 자제하는 것이다.”

 -지금 북한은 무모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한국은 인내심을 가지고 남북 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이 로켓을 쏘고 위협을 가하는데도 한국은 경제 지원 패키지(드레스덴 선언)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정(compassion)으로도 북한 주민과 연결돼 있다. 그런데도 북한은 미국을 타격 범위에 두는 3단계 로켓 발사 시험을 했다. 또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내심이 줄고 있는데 이는 다행스럽다. 내가 1998년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으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당시 미사일 기술의 확산 방지 문제를 거론하자 북한 당국자는 ‘그러면 얼마나 줄 수 있는가’를 묻더라.”

 -한국의 최초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을 어떻게 생각하나.

 “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에 만나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감탄하는 건 박 대통령이 가진 강인함(tough)이다. 강인하지 않으면 나라를 이끌 수 없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따뜻했다. 박 대통령의 아픈 개인사를 알고 있기에 양친을 모두 잃었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따뜻한 감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대단한 강점이다.”

 하먼 소장은 인터뷰를 마친 후 이뤄진 오바마 정부의 이라크 반군 공습에 대해 “(소수 종파가 겪는) 인도적 위기 사태를 막고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e메일로 답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을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다. 정말 똑똑한 대통령이다. 그런데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의회가 제대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가 협조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뭔가 하기가 어렵다. 다른 이유는 대통령이 (의회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정치는 가장 힘들 때조차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내 조언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무리 힘들어도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와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드로윌슨센터는 ‘의회·행정부 등에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탈정파적 정책 포럼’을 목표로 초당파를 지향하는 미국의 대표적 외교·안보 싱크탱크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최초의 박사 출신이자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기념해 1968년 만들어졌다. 미국 의회가 법으로 설립 근거를 정했으며, 예산의 3분의 1을 정부가 지원한다. 이 때문에 대통령이 소장을 임명하고 있다. 2011년 2월부터 센터를 지휘하는 제인 하먼 소장은 “150여 명의 지구촌 최고의 학자들이 분야별로 포진해 있다”며 “우리는 국제 현안이 어떻게 등장했고 다른 이슈와는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역사적 맥락에서 고찰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있다. 2005년부터 경남대와 공동 학술활동을 하고 있으며, 하먼 소장은 2012년 경남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센터의 한국사 및 공공정책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제임스 퍼슨 박사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은 3·1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며 “윌슨 대통령이 프린스턴대 총장으로 있을 당시 프린스턴대 박사 과정으로 유학 중이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윌슨 총장의 사택을 두 차례 찾아갔다는 기록도 있다”고 밝혔다. 하먼 소장의 아들은 컬럼비아대 재학 중 만났던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 하먼 소장은 “한국인 며느리를 뒀으니 나도 한국의 일부”라고 말했다.

  하먼 소장은 인터뷰 도중 “지난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내 친구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힐러리는 나라를 이끌 대통령의 자격이 있다”고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하먼 소장은 인터뷰 말미에 “나는 8명의 자녀를 키운 ‘옥타맘(octamom)’”이라고 했다. 8개를 뜻하는 ‘옥타’와 어머니를 합친 말이다. 직후 “한국에선 타이거맘(강한 어머니)이 재능을 갖춘 여성들을 많이 키워 내고 있다”며 “능력 있는 여성들이 더 많이 공직에 진출하고 여성 정치인들도 더 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4년 8월 19일(화)자 8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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