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경상일보 칼럼]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5.23 08: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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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의 달걀’은 처음부터 틀렸다

  ‘예단’(豫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리 판단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어느 일을 두고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예단합니다. 그 예단을 믿고 삽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인 콜럼버스(1451~1506)는 자신을 비난하는 세력 앞에서 애꿎은 달걀을 이용합니다.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워보라고 한 뒤 자신의 비난세력들이 세우지 못하자 달걀 끝을 탁자에 톡톡 쳤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는 달걀 껍질이 깨지자, 깨진 쪽이 밑으로 가게 해서 달걀을 세웠습니다.

  콜럼버스의 달걀은 ‘발상의 전환’의 예로 오랫동안 저를, 달걀은 세울 수 없는 것이라고 예단하게 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엉킨 실타래를 푼 것도 마찬가집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은 실타래를 푸는 대신 칼로 그 실타래를 싹둑 잘라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콜럼버스의 달걀 이야기를 듣고 오랫동안 그를 ‘위대한 탐험가’로 존경했습니다. 그 존경에는 그가 세울 수 없는 달걀을 멋지게 세운 사람이란 것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존경은, 바른 역사를 배우면서 달걀이 바닥에 떨어져 깨어지듯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 즉 아메리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상륙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메리카에는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었기에 그는 침략자였습니다. 그는 결국 여왕에게 버림받고 가난 속에서 쓸쓸하게 죽었지만, 콜럼버스와 그의 부하들이 원주민들에게 가한 잔혹한 행위는 그의 명성을 침략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저는 그로인해 달걀을 세울 수 없다고 믿어왔습니다. 혹시?, 의심하며 달걀을 세워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후배 시인이 달걀을 세우는 것을 직접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달걀이 선다는 것에 놀란 것이 아니라, 제게 주술처럼 걸린 그 예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달걀을 세웠습니다! 달걀 세운 이야기를 하면 으레 나오는 질문처럼 삶은 달걀이 아니라 날달걀이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 예를 소개했는데 많은 학생들도 달걀을 세웠습니다. 몇 개씩 세우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달걀은 세울 수 있습니다. 다만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합니다.

  ‘콜럼버스의 달걀’로 돌아가, 그때 누군가 콜럼버스 앞에서 달걀을 세워서 그 사실을 보여줬다면 역사는 좀 더 평화롭게 기록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에 가정은 용납되지 않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 침몰 이후 참으로 많은 예단들이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합니다. 지난달 17일에 침몰된 후 지금까지 사망자 288명 실종자 16명이란 숫자가 말해주듯, 사고 이후 단 한 명의 실종자를 구해내지 못했습니다. 사고 소식을 접하며 그 많았던 실종자들 중에 살아서 돌아올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 믿음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타이타닉호의 침몰 때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은 에드워드 존 스미스 선장의 일화가 가르쳐주었듯, 선장은 그런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속옷차림으로 탈출하는 세월호 선장의 모습은 세월호만큼 큰 달걀이 통째로 깨어지는 충격이었습니다. 그것도 선실에서는 ‘기다리라’는 방송에 구명조끼를 입고 기다리는 어린 고등학생을 두고 말입니다.

  세월호의 침몰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을. 아니, 안전이라는 말은 원래부터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안전이란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세월호 침몰 전과 후로 구분돼야 합니다. 생명인 달걀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임시방편으로 달걀을 깨서 세우는 사람이나 그 말에 현혹되어 예단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찾지 못한 실종자를 두고 지방선거판이 다시 요란해집니다. 우리 사회는 생명이 숨 쉬는 커다란 달걀입니다. 그 생명의 밑을 깨서 세워놓고는, 언제 깨어지지 못할 안전불감증의 세월을 만든 후보들이 더 요란하게 떠드는 계절입니다.

<위 글은 경상일보 2014년 5월 23일(금)자 1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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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 2014-05-25 02:01:59
언제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달걀을 세워 볼 생각을 한번도 하지못했다는게..
예단이라는 일이 얼마나 사람의 생각을 막아설수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채진석 2014-05-24 19:05:13
저도 달걀을 세워 보니 정말 섰습니다 ^ ^

콜롬버스로 인해서 사라졌을 문명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시대와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