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경남도민일보 칼럼] 안차수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5.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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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어라'는 안내방송과 한국 언론

  이발하기 위해 오랜만에 동네 미용실에 갔더니 사장님이 JTBC를 보고 계신다. 마치고 짜장면을 한 그릇 먹기 위해 중국집엘 갔더니 역시 같은 방송이다. 미용실 사장님 왈, '세월호 보도를 믿고 볼 만한 방송은 이곳밖에 없다'는 것이다. 홀에서 서빙하시는 중국집 여사장님은 한술 더 떠서 '손석희만큼 공정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세월호 때문에 국민이 언론 보는 눈이 매서워졌다. JTBC의 뉴스 시청률이 공중파를 앞섰다는 최근 보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세월호 사건 보도의 중심에 '손석희 뉴스'가 자리 잡았다. 국민이 손석희 뉴스에 기대는 이유는 명백하다. '저 뉴스가 더 낫더라'가 아니라 '저 뉴스라면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학생 전원구조라는 충격적 오보와 사망 보험금이라는 분노 촉발 보도 외에도 우리 언론이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보여준 모습은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지경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한국 사회의 공신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가만히 있어라'는 안내방송의 이면에 이토록 무서운 한국 사회의 응축된 부조리가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배를 책임지는 선장의 말, 선장과 선원을 책임지는 선주의 말, 구조를 책임지는 해경의 말, 여객수송을 관리 감독하고 재난관리를 책임지는 정부의 말, 그동안 당연히 믿어야 할 모든 것의 공신력이 땅에 떨어졌다. 이런 말들을 여과 없이 확인 없이 보도한 언론의 말 역시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은 공신력을 행세하던 사람들을 믿을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저의가 있어 반대로 해석하거나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지경이다. 이 와중에 터진 서울 지하철 추돌사고에서 일부 승객들은 지시를 무시하고 임의로 탈출했다고 한다. 세월호 사태를 유심히 본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말을 순순히 따르면 기막히게 희생되는 믿기지 않는 현실, 그리고 부조리한 역사적 순환을 깨달으며, '믿는 내가 바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먹히지 않고 영이 서지 않는 사회로 후퇴하게 된 것이다.

  손석희 뉴스는 신뢰할 수 없는 사회, 그래서 불안한 사회를 반영한다. 많은 국민이 실제 밤마다 악몽을 경험할 정도로 이번 세월호 사건은 끔찍이 슬프고 아프다. 그래서 이 지경에 이른 작금의 사태에 분노하는 것일 텐데, 이 분노의 에너지는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큰 교훈을 통해 신뢰사회를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희망과 실천의 갈구이고, 또 다른 면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회로의 도피이다.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라는 비관과 자조가 분노의 도피처인 셈이다. 상징과 압축을 좋아하는 외신들이 선택한 사진 속의 장면, 기울어가는 배에서 속옷 차림으로 제일 먼저 탈출하는 선장의 모습은 부조리한 사회적 현실, 그리고 2014년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모습에 분노한 국민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확인한 강고한 부패의 카르텔을 깰 수 없을 거라는 불안과 마주한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 세월호가 승객들을 향해 안내한 방송이다. 세월호만 그럴까? 한국 언론이 국민을 향해 이 동일한 안내 방송을 한 지 꽤 오래되었다. 세월호와 차이가 있다면 국민이 '한국호'라는 좀 더 큰 배에 탔다는 것이며 손석희 뉴스처럼 '가만히 있지 말라'라는 다른 안내 방송도 있다는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언론과 그것을 알아보는 국민이 많아지고 있다. 공신력 있는 뉴스가 기울어가는 배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희망 때문이다. 모든 언론과 언론인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어떤 안내를 하고 있는가?

<위 글은 경남도민일보 2014년 5월 9일(금)자 11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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