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일보 칼럼] 김근식 교수
[시민일보 칼럼]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4.14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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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누락된 통일론

  요즘 통일이 최대 화두다.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은 급기야 통일부를 제쳐두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통일준비위원회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통일 독일을 찾은 대통령은 더더욱 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주요 언론은 이미 통일이 미래의 희망임을 앞다퉈 주장하고 있다. 거의 ‘통일만이 살길’이라는 분위기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박대통령이 밝힌 한반도 평화통일 구상은 최근의 통일담론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방법을 담고 있다. 통일 대박을 이루기 위한 현실적인 대북 제안과 남북협력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크게 인도적 문제 해결과 민생 인프라 구축 및 민족 동질성 회복 등으로 요약되는 세 가지 대북 아젠다는 그 자체로 나름의 유용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박대통령의 통일담론이 일각에서 우려하던 북한붕괴를 기대한 대북 압박론이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일단 안심이 되기도 한다. 대북 제안 모두 일관되고 점진적인 대북 교류협력과 화해를 통해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접근방법이기 때문에 드레스덴 구상은 북한붕괴론과 대북압박론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이번 구상은 비핵화가 전제조건으로 자리잡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박대통령의 대북 접근이 이명박 정부와 달리 선 비핵화 후 남북대화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역시 적이 안심이 되는 대목이다. 또한 지금 남북관계를 막고 있는 5.24 조치를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실제 대북제안이 성사될 경우 5.24를 우회할 수 있는 접근을 시사하고 있는 점도 향후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즉 이번 드레스덴 연설은 박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접근방법을 밝힘으로써 붕괴론을 전제한 압박일변도가 아니고 비핵화를 전제조건화하지 않으며 5.24를 우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제안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드레스덴 이후 한반도의 현실은 전혀 긍정적이지 못하다. 북한은 남측이 비방중상 중단 약속을 깼다며 연일 박대통령을 실명 비난하고 있고 NLL에 접근한 북한 어선을 남측은 경고사격후 나포해서 물리력으로 돌려보냈다. 급기야 북은 서해상에서 대규모 포격훈련을 감행하고 남측 역시 맞대응으로 포격을 교환했다. 북한 외무성은 4차 핵실험까지 거론하며 위협하고 있다. 드레스덴 연설이 담고 있는 인도적 문제와 경제공동체와 문화적 동질성 회복도 중요하지만 지금 전개되는 한반도의 현실은 그것들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정치적 대결의 해소와 군사적 대치의 해소임을 짐작케 한다. 남북이 서로 상대방을 비방중상한다고 욕하고 있는 정치적 현실, 서해상에서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와 충돌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서 남북관계가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로 나아갈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결국 지금 거론되는 통일론은 뭔가 중요한 게 빠져있다. 핵심이 빠져 있으니 웬지 공허하고 빈말 같다. 당장 한반도의 실제 현실과 비교해보면 통일대박론도 통일준비론도 통일미래론도 모두 장밋빛 환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과연 통일대박을 거론할 만한 것인가?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현실의 한반도는 군사적 대결과 전쟁위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2013년 한반도가 겪은 전쟁위기는 오래전 일이 아니다. 지금도 서해에는 남북의 팽팽한 군사적 긴장이 감돌고 있다. 북은 미사일 발사를 해대고 남은 언제라도 북에 대한 응징을 준비하고 있다. 군사적 대결이 상존하고 전쟁 위협이 내재되어 있는 한반도 현실에서 통일이 대박이라는 구호는 어찌 보면 한가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남북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 전제되지 않는 한, 지금 이 상태에서의 통일은 분명 크나 큰 충돌과 재앙을 결과할지 모른다. 핵을 보유하고 위협적인 재래식 무기들과 언제나 남쪽을 향하고 있는 장사정포와 방사포들이 즐비한 지금 한반도의 현실이 그대로 존치한다면 통일의 상황이 반드시 평화적으로 진행될 거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군사적 긴장 외에도 남북관계 자체도 평화로운 통일에는 아직 가까지 다가서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진정한 의미의 화해와 협력보다는 상호 불신과 힘겨루기에 익숙해 있다. 북이 내놓은 중대제안은 항상 진정성이 없는 것이고 우리가 요구하는 이산가족 상봉을 북이 조건없이 받아야만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아전인수격의 대북인식은 결코 남북관계를 상호신뢰로 진전시키기 어렵다. 여전히 지금의 남북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굴복시켜야 할 상대로 여기는 경우가 더 많다. 진정으로 평화로운 남북관계가 아니라면, 전면적 화해와 협력이 일상화된 남북관계가 아니라면 통일의 상황이 도래한다 해도 그것이 과연 대박일 수 있을지 전혀 확신하기 어렵다. 통일이 된다면 과연 북한 주민들이 한국을 선택할까? 과연 남쪽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을 두 팔 들고 환영하면서 같이 살자고 할까? 지금의 남북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혐오하며 불편해하는 정도가 더 커지고 있다. 남북관계의 평화가 자리잡지 않은 한, 우리가 맞이하는 통일은 매우 갈등적이고 폭력적이고 소모적인 통일이 될 수 있다.

  평화없는 통일의 위험성은 사실 우리 내부의 폭력적인 이념갈등이 가장 심각하다. 이른바 남남갈등으로 불리는 우리 내부의 분열과 적대는 지금 도를 넘어도 한참 넘고 있다.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여와 야가 보여주는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과 색깔론은 가히 비정상을 넘어 위험천만한 지경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을 주장하는 사람은 무조건 친북 빨갱이거나 김정은 추종세력으로 매도되고 북한인권법을 반대하면 종북세력으로 낙인찍히는 우리 내부의 현실은, 막상 통일이 되었을 때 사상 유례없는 사상검증과 이념몰이가 대대적으로 진행될 개연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통일이 오히려 대대적인 좌익 색출과 진보 죽이기로 변질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군사적 긴장이 여전하고 하시라도 군사적 충돌과 전쟁 위기가 발현되는 한반도의 현실, 상호 불신과 힘겨루기와 신경전으로 얼룩지고 있는 남북관계, 갈수록 격화되고 잔인해지는 남남갈등의 우리 내부 현실을 생각하면 지금 우리에게 통일은 비평화적이고 폭력적이고 적대적인 일방의 합병이 될 가능성이 높고 그 상황은 진정 대박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다. 평화가 빠진 통일론은 그래서 항상 위험하다.

 

<위 글은 시민일보 2014년 4월 13일(일)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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