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고] 송민순 교수
[한국일보 기고] 송민순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3.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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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향한 카프카적 인식과 다짐

  통일을 향한 우리의 열망을 생각하면 20세기의 고전 작가로 불리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성(城)'을 떠 올리게 된다. 주인공 K는 성의 공식 측량기사로 초빙되어 성이 있는 마을에 도착하지만 정작 성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기존의 질서를 깨뜨릴까 경계하고, 자신의 과오가 드러날까 두려워하는 촌장과 관리들이 K를 다방면으로 방해했기 때문이다. K는 본업과 상관없는 일로 마을을 떠돌다 결국 측량기사로서의 정체성마저 상실한다는 이야기다. 국가권력과 그 주위에 기생하는 부조리의 성벽 앞에서 좌절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해한다.

  카프카가 부각시키는 성 내외의 부조리는 한반도 통일을 가로막는 현실의 냉혹한 벽을 연상케 한다. 평화 파괴와 전쟁 만행의 죄과로 참회의 길을 걸어야 할 일본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오히려 일제 강점의 유산으로 분단의 고통을 안게 된 한반도가 신음을 계속하고 있다. 동북아의 핵심적 모순을 두고 국제사회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저마다의 셈을 하는 데 바쁘다.

  국제사회의 이런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향한 우리 스스로의 힘을 키워야 한다. 네 가지 역량이 필요하다.

  첫째, 통일 의지와 방법에 관한 국론 통합, 즉 사회적 응집 역량이다. 5년 정권의 제약을 넘을 수 있는 지속력이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정책으로도 북한은 물론 주변국을 설득하지 못한다.

  둘째, 통일을 감당할 사회경제적 수용역량이다. 남한 자체의 경제력을 확충하고, 남북 격차를 축소하면서, 통일 시점에는 전후의 유럽 부흥계획 같은 국제개발계획을 도입하는 복합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셋째, 남북간 화합 역량이다. 정권과 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삼는 북한과의 대화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가지 않는다. 뒷걸음치지 못하게 앞으로 끌고 가는 동력은 우리 몫이다.

  넷째, 주변국이 통일을 지지하게 만드는 국제공조 역량이다. 한반도 휴전체제의 배경인 미국과 중국간 전략적 대립구도는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중이 공유할 수 있는 통일한국의 미래상을 우리가 그려야 한다.

  가장 큰 관건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미중의 조화를 도모하고 핵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그래서 "핵 없는 세상의 비전은 한반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은 더욱 일리가 있다. 북핵 능력발전을 차단한다는 보장 하에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시사한 것을 주목한다. 결국 중국은 대북억제를 보장하고 미국은 탄력적 대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연결시켜야 할 고리이다.

  헤이그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했다.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지만,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통일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이기에 목에 걸린다. 반면 미국은 한미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통일을 바란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냉혹한 현실이다.

  흔히 통일 독일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듯이 미군이 38도선 이남에만 주둔하는 조건이면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통독 당시 소련은 독일이 나토로부터 탈퇴하고 미군이 독일 전역으로부터 철수하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러나 서방측이 중립화된 독일은 오히려 핵무장 세력으로 등장하여 동서 모두에 위협이 될 것임을 경고하면서 소련을 설득하였다. 해체에 직면하고 있던 소련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통독의 최대 장애가 해소되었다.

  통일한국을 한미 동맹에 묶어 두어야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부상일로에 있는 중국이 받아들일까. 다른 설득의 길이 있다. 한미 동맹의 해체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독자 핵능력을 강하게 부추길 것이다. 그래서 미중이 수용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존재양식과 운용방식을 창출하는 것이 동북아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 논의는 우리만이 주도할 수 있다.

  근세사가 우리 민족에게 던진 거대한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하여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카프카적인 냉철한 인식과 맹렬한 다짐이 필요하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4년 3월 27일(목)자 29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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