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시론] 임을출 교수
[경남신문 시론] 임을출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3.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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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통일 논의 방향

  통일 논의가 활발하다. 통일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현재 밑바닥에 머물고 있는 남북관계 신뢰 수준, 교류협력 수준 등을 고려하면 왠지 통일논의가 이상론에 머무는 것 같아 염려스럽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 통일을 목격했던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일화를 빌려 한반도 통일 역시 새벽 도둑처럼 조용히 갑자기 찾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 오늘날 북한 내부와 한반도 주변 현실에 비춰보면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측면에서 서독에게 통일은 갑작스럽게 닥친 것이 아니라, 수십년 동안 꾸준히 이어온 교류협력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동서독은 분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양적, 질적 측면에서 높은 수준으로 교류가 이뤄져 왔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초 브란트의 동방정책 이후 서독정부가 국제적 긴장완화 분위기에 편승하여 분단에 따른 인간적 고통의 완화, 민족의 정체성 유지 및 분단의 평화적 관리를 위해 동독과의 관계개선과 교류·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것이 통일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양측 간의 교류와 협력은 상호관계의 개선, 분단에 따른 고통완화, 민족의 동질성 유지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독일통일의 밑거름이 되었다.

  남북간의 교류협력 수준은 동서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 상호 신뢰가 전혀 쌓여 있지 않은 데다, 분단 고통은 고령 이산가족들의 사망이 대폭 늘면서 더 악화되고 있고, 남북간의 이질성은 갈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 남북간 경제력 격차는 더 벌어져 지난해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38배나 차이가 난다. 그렇다고 앞으로 수년 안에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어 이런 격차가 해소될 전망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특히 본격적인 남북경협 재개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핵문제는 북한 정권이 미국 등 주변국들로부터 체제 안전과 상당 수준의 경제적 실리를 보장받지 않으면 양보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북한은 핵 무력이 정권유지의 핵심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조기 통일은 초기에 적지 않은 고통과 희생, 그리고 갈등을 수반할 것이다. 복지예산 100조 원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430만 명에 이를 만큼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급격히 늘어나는 복지 예산과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앞으로 상당 기간 국방예산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은 벼랑 끝에 서 있는 남측 국민들은 물론 북한 주민들의 복지 기대수준을 충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독일의 경우 통일 비용의 50% 정도는 동독 주민들의 연금,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기금으로 활용됐다. 서독이 통일로 인해 내수 진작 효과를 누린 건 고작 최초 1~2년 정도에 불과했고 10여 년 동안 장기적 경제침체를 겪어야 했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미래에 언젠가는 닥칠 통일을 치밀하게 준비하면서도 남북한 주민이 모두 행복하고 주변국들도 자연스레 통일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통일대박을 만들기 위해서도 비핵화와 더불어 남북간 교류협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 통일 이후 순조로운 통합을 하려면 평소에 각종 격차를 줄여 나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복지 비용 부담을 줄이려면 북한 주민의 자생력을 키워놓아야 하고, 이는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특구를 확대해야 가능하다. 앞으로의 통일 논의는 이런 과정들을 구체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4년 3월 10일(월)자 23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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