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혼을 찾아서(2) 안중근 의사의 시모시자(是母是子)
민족의 혼을 찾아서(2) 안중근 의사의 시모시자(是母是子)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4.11.26 13:2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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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5호 ‘국보, 보물 1호를 아십니까?’를 이어 두 번째 기획인 ‘안중근 의사의 시모시자’가 연재된다. 본문에서 ‘부모들의 국가 의식과 교육관이 자녀들의 인생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죽음을 앞둔 안중근 의사의 부모는 민족 앞에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번 기획인 ‘안중근 의사의 시모시자’를 통해 자녀들의 인생관의 큰 역할을 하는 부모들의 행동을 다시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편집자 주>

종교인으로서 개인의 신앙을 뛰어넘어 민족혼의 의식으로 삶을 살다간 인물 중에 사명대사와 안중근 의사를 들 수 있다. 두 분은 종교인으로서는 금기사항인 살생의 계율을 어겼지만 내가 있고 민족이 있어야 종교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 해 보였다.

안중근은 사형 선고를 받고도,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나는 이렇게 될 것을 안지 오래다 내 구차스럽게 살기를 원치 않으니 상고를 포기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며 재판장의 만행을 비웃으며 즉석에서 상고를 포기했다. 이렇게 안중근이 상고를 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사형선고 소식을 전해들은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가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 응칠아!(어릴 때 이름) 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만방에 보여 준 것이다. 이 분노의 불길을 계속 타 오르게 하려면 억울하더라도 상고를 하지 말고 우리 민족의 대의를 위해 거룩한 죽음을 택해야 될 줄로 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이등박문을 죽인 너를 일본 놈들이 살려 줄 리가 있겠느냐.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애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기왕에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를 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 바란다. 이 글을 본 일본인들이 얼마나 놀랐으면 시모시자(是母是子: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라고 하여 신문에 대서 특필 했겠는가?

이 내용은 당시 여순 감옥에서 안중근을 지켰던 간수 지바도시치(千葉十七:27)가 모자간의 편지 내용에 감동되어 자신의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던 것이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안중근은 사형 직전에 지바에게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라는 휘호를 마지막으로 써 주었는데 10년 후 고향에 돌아온 지바는 大林寺에 안중근의 유묵을 각인 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제단을 차려 의사의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주민들은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일이며 일본인에게는 이토의 순국일인 매년 10월26일 전후해서 군내의 초, 중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대림사를 찾아 안중근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고 있다.

카톨릭 집안이었던 안 의사를 당시 친일적 교회는 이등박문을 저격한 살인자라며 “살인죄”로 단죄하여 평신도 자격을 박탈하였으나 1993년 8월에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를 통해 한국카톨릭교회는 뒤늦게 안중근 의사의 복권을 선언했으니 다행한 일이다. 안 의사의 독립투혼은 중국의 5.4운동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건국 정신이자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철학에 바탕을 둔 국학(國學),국혼(國魂)교육이 상실되어 이웃나라들에게 역사왜곡을 당하고 있는 지금 부모들의 국가 의식과 교육관이 자녀들의 인생관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번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1910년 31세의 짧지만 큰 삶을 살다간 안중근 의사는 우리에게 국가의 존재를 되새기게 한다.

김 수 곤 부회장(경남국학운동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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