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칼럼] 박태일 교수
[국제신문 칼럼] 박태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2.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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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구름 선생과 자유아동극장

 

  먼구름이라니? 세상의 유유상종·이합집산이 우스꽝스러우니 발아래 둔다는 뜻이셨던가? 돈·명예·쾌락 말고는 돌아볼 것 없다는 듯이 달려들고 쌈박질로 지새는 세상인심이 어처구니없어 눈과 귀를 씻고 살겠다는 뜻이셨던가? 먼구름이라는 토박이말을 호로 삼은 일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그 먼구름이야말로 나라 잃은 시대 만주 중국 험한 들로 골짝으로 오랑캐의 총구에 쫓기며 떠돌며 쓰린 조밥을 씹다 올려다보았을 빼앗긴 조국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서릿발 두꺼운 남의 나라 추운 땅에서 '강철로 된 무지개'를 바라보았던 이육사 시인의 웅비와 맞닿은 이름이 먼구름이다.

  먼구름 한형석(1910~1996) 선생의 삶과 뜻이 그렇게 잊히는가 싶었다. 그런데 이즈음 반가운 일이 알려졌다. 선생이 머물렀던 부산 부민동 집에 대한 옹벽 정비 사업을 서구청에서 마무리했다 한다. 게다가 다음 해까지 선생이 세웠던 '자유아동극장'을 복원한다는 소식이다. 기념관 건립까지 넣은 일이다. 경남부산 곳곳에서 '관광명소'를 겨냥해 이런저런 예술문화 축전이나 시설 건립, 재장소화가 적지 않게 이루어졌다. 부끄러움도 없이 졸속으로 서둘러 뒷날 쓰레기로 치우는 데만도 나랏돈이 들 일을 저지른 곳도 한둘 아니다. 대중적 흥미만 뒤따르는 얄팍한 행정편의주의 결과다. 그런 가운데 듣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1950년 경자년, 세 해에 걸쳐 숱한 우리 젊은이가 목숨을 바친 전쟁의 비극은 컸다. 졸지에 어버이를 잃고 거리를 헤매는 전쟁고아와 떠돌이 극빈 어린이가 부산에만도 수만에 이르렀다. 먼구름 선생은 그들의 호구뿐 아니라, 아무런 꿈도 없이 어린이들이 세상 어둠으로 빠져드는 현실을 아프게 바라보셨다. 그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먹는 일 이상의 사회 문제라는 점을 직시하셨다. 그리하여 두 달에 걸쳐 시설 준비를 마치고 1954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문을 연 곳이 자유아동극장이다. 궁핍한 피란살이 속에서 이룬 34평 크기의 작은 극장이었다. 버려진 어린이를 위한 마음은 있었지만, 용단을 내린 이가 드물었던 때다.

  선생의 뜻을 동지 양준석·정경순이 도왔다. 본디 선생은 어린이문화관을 지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힘이 부쳐 아동극장과 도서실부터 먼저 마련한 것이다. 그리하여 매일 아침 10시부터 11시까지는 주로 신문팔이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낮 4시부터 5시까지는 구두닦이·아이스케키팔이 어린이를 불러 영화와 인형극을 보여 주고자 했다. 한 번에 200명 남짓만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포부는 컸다. 개관식 때는 미공보원 원장과 자유중국 구국연합 이사장까지 참석해 성공을 빌었다. 당시 언론은 선생의 자유아동극장을 두고 '가엾은 어린 천사들의 위안장''전재(戰災) 어린이의 낙원'이라 불렀다.

  지역자치를 시작한 지 이십 년도 훌쩍 넘은 세월이다. 경남부산 지역에서도 여러 예술문화, 축전 행사가 잦다. 그 가운데는 선생과 같이 나라밖 만주 중국 땅에 머물렀음에도 오히려 선생과 같은 광복군 항왜 세력을 쫓고 족치는 선전·선무 공작에 앞장섰던, 괴뢰 만주국 협화회 간부 유치환과 같은 부왜 세력의 것도 있다. 어린이 사랑을 실천하고자 사재를 털고 빚을 얻어 겨레의 앞날을 걱정했던 먼구름 선생과 달리, 우리 어린이들이 어서어서 굳센 '일본 병정'으로 자라 왜왕을 위해 몸을 바치라 부추겼던 이원수와 같은 반민족 세력까지 기리는 얼빠진 짓거리도 있다. 전력은 묻히고 거짓 이름만 부풀려진 결과다.

  이번 먼구름 선생 현양 계획이 그러한 예술문화 행정의 정신실조를 꾸짖고 지역 정기를 바로 세울 디딤돌이 되기 바란다. 일을 펼치는 첫 마당이다. 그러니 자유아동극장 둘레를 선생의 본디 뜻을 살려 우리나라 유일의 한국어린이청소년문화관으로 키우는 기획은 어떤가. 어린이청소년 문화의 지난날과 오늘 그리고 내일을 한 줄기로 묶은 향유 공간이 그것이다. 근대 외세의 침략과 극복, 절망과 희망의 모든 과정을 어느 곳보다 먼저 겪었던 부산항이다. 거기를 내려다보며 서 있을 한국광복군 노병의 당당한 현양 시설은 단순한 장소 판촉의 대상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계획 단계부터 원려를 다하기 바란다. 

               <위 글은 국제신문 2014년 2월 5일(수)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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