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인터뷰] 극동문제연구소 이수훈 소장
[프레시안 인터뷰] 극동문제연구소 이수훈 소장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2.1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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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적 시간대' 동북아, '지역이익' 추구 가능한가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3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거보다 지금의 안보 현실이 중요하다며 한일 간에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과거사 갈등을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한편으로는 현재의 안보위협으로 북한 핵을 거론하며 한미일 3각 동맹을 공고히 해야 함을 강조했다.

  케리 장관이 북핵을 구실로 한미일 동맹을 강조하는 이유는 동북아 역내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패권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함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여 군사적인 역할을 부여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미국의 뜻대로 동북아 국가들이 쉽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에는 미·중 패권국 간 긴장으로 촉발된 갈등도 있지만 일본과 다른 동북아 국가들 사이의 과거사 갈등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아베 정권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일본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면서 주변국의 신뢰도 얻을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치·군사적 갈등과 과거사 갈등, 두 개의 전선이 상존하고 있는 동북아는 그래서 흡사 120년 전 구한말 갑오년을 연상케 한다. 그 때보다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역내 패권의 변화와 이에 따른 긴장과 갈등의 양상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역시 그 때처럼 역내에서 가장 약한 힘을 갖고 있는 한국은 지혜로운 동북아 외교를 펼쳐야 하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격랑의 동북아와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외교’를 주제로 포럼을 주최한 이수훈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장을 만나 현재 동북아 긴장의 원인과 해결 방안, 나아가 우리의 역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수훈 소장은 현재 동북아가 미국과 중국의 권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중첩적 시간대’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 소장은 “이런 상황에서 동북아 역내 지도자들은 ‘각자도생’의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며 “공동체, 통합적 질서, 협력 등을 동북아의 새로운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담론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국익을 아주 협소한 민족주의의 개념에서만 추구하고 있다면서, 현재 동북아에는 한 지역 내의 긴밀한 경제적 유대와 사회문화적 교류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지역 이익’이 실종돼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국익과 지역 이익은 얼마든지 선순환될 수 있다”며 동북아가 협소한 국익을 넘어 지역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 그는 동북아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띄게 된 중요한 단초로 남북이 분단돼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여기에 북핵이라는 변수는 역내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소장은 “동북아가 공통의 지역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6자회담의 틀을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이수훈 소장 연구실에서 <프레시안>박인규 이사장과 대담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이수훈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이수훈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일본 일간지인 <요미우리 신문>이 ‘중·일 냉전’이라는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신문은 풀기 어려운 영토문제는 일단 놔두고 서로 경제협력에 충실하자고 했던 1972년 체제가 무너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이렇게 된 시점을 2012년 일본의 센카쿠 열도(尖角列島,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국유화 조치 이후라고 진단했다. 경제교류와 협력은 활발하지만 군사·안보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불안정한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가 동아시아 미래에 굉장히 어려움을 줄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 동북아의 지정학적 상황과 군사·안보적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수훈 : 우선 동북아가 어떤 시간대에 들어가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지난해 연말 펴낸 책에서 (<동북아 공동의 미래를 생각한다>, 이수훈 지음, 선인 펴냄)현재 동북아 지역이 “중첩적 시간대”에 들어가 있다는 주장을 편 바가 있다. 두 개의 세력, 즉 미국과 중국 권력이 중첩돼있다는 것이다. 현재 제반 흐름을 생각해봤을 때 동북아의 패권국가로 미국을 꼽기는 힘들다. 미국을 그렇게 인식하는 것은 뭔가 흐름에 뒤처져간다는 감이 들고, 그렇다고 중국의 시대라고 단정 짓기에도 이른 감이 있다. 현재의 동북아 상황을 ‘위기·혼돈’ 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동북아 각 국가들은 크게 두 방향의 선택지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각자도생, 즉 개별 국가들이 각자의 국익만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보자는 비전을 갖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이는 동북아가 협력과 통합을 통해 공동체를 만드는 수순으로 갈 수 있다는 전망이 담겨 있다. 후자가 바람직한 방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동북아 역내 지도자들은 전자, 즉 ‘각자도생’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국,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도 각자도생을 택하고 있다. 공동체, 통합적 질서, 협력 등을 동북아의 새로운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담론이 없다. 과거에는 한국 지도자든 일본 지도자든 동북아 공동체, 통합외교 등의 시도도 많았지만 오늘날엔 모두 증발된 상태다. 

  설사 각자도생으로 방향을 잡더라도 적절한 각자도생이 필요한데 동북아 국가들은 철저한 각자도생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동북아 상태를 거대한 태풍 속에 있는 배 한 척에 비유해보면, 서로가 서로를 향해 “너 배에서 내려. 나 살아야겠어”라고 말하는 도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 상황을 적절히 수습해서 태풍을 피하고, 저 멀리 보이는 등대를 향해 같이 나가자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게 되고 있지 않은 정세속에 빠져 있다.

프레시안 : 동북아 공동체와 같은 지역협력에 대한 담론은 김대중 전 대통령 때도 나왔던 이야기였다.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 由紀夫) 전 총리가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하고. 하지만 현재 동북아는 민족주의에 기반한 각자도생이 팽배한 것 같다. 심지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최근 동북아에 “전쟁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북아가 이런 상황에 접어들게 된 것은 동북아 역내에서 일종의 ‘안정자’ 역할을 했던 미국의 국력이 약해졌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 아닌가?

이수훈 : 2차대전 이후 구축된 미국 헤게모니 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에 있다. 이것이 동북아 현재 정세를 가름하는 기폭적 현실이다.  미국 역내 헤게모니 해체가 현재 동북아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일각에서는 미국 헤게모니의 해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쇠퇴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여파가 동북아 역내 이런저런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센카쿠 열도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중·일 간 해양 영유권 갈등을 미국 헤게모니의 해체와 연관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 헤게모니체제 하에서 만들어놓은 동북아 질서가 해체됨으로써 그 질서 속에서 규정된 것들도 힘이 약화됐다. 그 사이에 미국 헤게모니와는 다른 논리들이 들어오면서 헤게모니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해상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늘도 마찬가지지만 해상에서는 눈에 보이는 선을 그을 수 없다. 이러한 해상이라는 공간적 특성은 국제질서가 투영되기에 취약하다. 세력 변화에도 무척 민감하다. 육지에는 분명한 선을 그을 수는 있지만, 막상 영토 분쟁은 당사국들에게 부담스러운 카드다. 이러한 특성 탓에 바다에서의 분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과거에도 세력 전이의 시작은 바다였다. 해상이 국제법에 가장 취약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법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세력의 역학관계를 반영해왔다. 이렇듯 가장 민감하고 취약한 곳이 바다이기 때문에 이어도, 센카쿠, 남사군도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일 간의 독도 분쟁도 이런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동북아 각국은 ‘지역 이익’을 고민해야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의 영토전쟁>의 저자인 마고사키 우케루(孫崎享)는 센카쿠 열도의 영토 분쟁을 격화시킨 책임이 일본에 있다고 주장한다. 2012년 국유화 조치, 2010년 일본의 중국어선 나포가 주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중국은 지난해 11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이를 두고 통항·통행의 자유에 반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정제되지 않는 주장과 선언들이 봇물하고 있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 이수훈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이수훈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수훈 : 동북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각자의 명분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영토문제는 어떻게 보면 역사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단 일본 같은 경우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원죄가 있다. 현재 일본 정권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자신들의 노선을 정하고 그에 맞춘 언행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일 간 정상회담도 열지 못하는 대단히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해서 내각 각료들의 언행이 중국이나 한국 입장에서 보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이 관계가 원활히 풀리기는 대단히 힘들다.

 

 

  그럼 일본은 왜 이런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국내 정치와 긴밀하게 연관돼있기 때문이다. 최근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지지한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후보가 당선됐다. 이것이 일본의 정치 지형이 상당히 변화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앞으로의 한일 관계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든다.

  중국 역시 이른바 ‘중화질서의 복원’을 목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몽’(中國夢)이라는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강대국인 중국이 이런 식으로 나가면 한국 국민은 여기에 대응한 반응적 민족주의 성향을 띄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과 중국이 국익을 아주 협소한 민족주의의 개념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지역 내에서 긴밀한 경제적 유대, 사회문화적 교류 등 이른바 ‘지역 이익’이 실종된다.

  예를 들어 유럽 같은 곳에는 지역 이익이 존재한다. 또 지역 이익이 주민들 생활에 깊숙이 관련돼있다. 예를 들어 어떤 마을에서 인프라를 하나 건설하면 유럽연합(EU), 국가, 지방정부 등에서 지원금이 나온다. 유럽 전체가 어떤 성격의 질서로 구축돼 있는지가 저 낮은 지방이나 지역사회 주민들의 복지와 바로 연결되는 것이다. 반면 동북아는 이러한 지역 이익이 없다. 경제적인 이익뿐만 아니라 평화, 공동체, 협력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지역 이익에 포함되는데 지금 동북아에는 협소한 국익의 논리만 있고 지역 이익은 없는 셈이다.

프레시안 : 유럽은 세계 1,2차 대전을 통해 전쟁을 해봐야 별다른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동북아는 그럴만한 계기가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하지 않는 상황이고. 이런 요인들 때문에 공통의 지역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이수훈 : 일단은 일본에 원죄가 있다. 과거를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여기에 현재 한중일 3국을 움직이고 있는 리더십이 상대를 자극하는 것에 반작용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각국이 추구하는 협소한 국익은 각 국가 주민 다수의 국익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진정한 국익은 아니다.

  120년 전 갑오년에 봉기를 일으켰던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오늘날 이야기하는 보편적 복지였다. 지난 대선 때 화두가 됐던 것도 이 문제였고. 그런데 대선 이후 보편적 복지 어젠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엉뚱한 것이 남았다. 120년 전 그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공공의,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폭넓은 이익이었다. 그런데 지금 동북아에서는 ‘이익’이라는 것이 굉장히 좁게 재정립된 상태다. 이러다 보니 국익과 지역 이익이 상호 조화롭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국익과 지역 이익은 얼마든지 선순환될 수 있다. 국익도 추구하면서 지역 이익을 높이면 그 지역 이익이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서 국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동북아에는 지역 이익은 없고 국익만 남아 있는데, 그마저도 대단히 협소하게 인식돼있다. 이것을 깨야 한다.

프레시안 : 국가 이익과 지역 이익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일본은 지역 이익보다는 국익을 중시하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면 결국 내셔널리즘을 이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고, 방공식별구역도 이러한 연장선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중·일 지도자들의 행태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수훈 : 이렇게만 가서는 곤란하다. 민족주의가 경우에 따라 건강하게 작용될 때도 있는데 현재 양국에서 보여주고 있는 민족주의는 대단히 방어적이고 협소한 것이다. 각국의 유연하지 못한 정치적 환경과 더불어서 다수 국민들의 보편적 복지와 무관한 좁은 이익과 민족주의가 결부될 경우 복지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일 간 산적해 있는 현안이 있는데 독도 문제와 같이 정부 간 걸려있는 영토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쟁점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이고 접근이다. 과거에는 그런 접근에 대한 일종의 합의가 한일 양국 간에 있었다. 그런 문제를 드러내놓고 하기보다 조용한 외교를 통해 관리해가자는 합의가 있었다. 이제 그런 합의가 다 깨졌다.

  2012년 여름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느닷없이 독도를 방문해서 이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 또 얼마 전에는 우리 대학생들이 일본 야스쿠니 신사를 아베총리의 참배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원정대”를 만들어 방문하여 일대 소동이 있었다. 이런 일이 동북아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들이 결국 미래를 담당하고, 이들이 한일 양 국가의 저변을 만들어가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19세기말적 국가 간 갈등의 전면에 나서 있는 현실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기성세대와 정치 세력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정권에 의해 생겨난 갈등을 부추겨 서로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이 훼손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민은 무한하다. 

프레시안 : 사실 일본 국민 중에는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절반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아베 정권과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이수훈 : 그렇다. 10년 전에도 일본과 갈등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국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트랙으로 서로가 접촉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양상이 좀 다르다. 한중일 3국의 정부와 정치인들의 논리에 국민들이 더불어 춤을 추고 휩쓸리고 있다. 안타까운 상황인데, 이렇게 되면 동북아 미래가 더 우려스러운 상황이 된다.

동북아 지역 이익, 남북관계 개선부터

프레시안 : 국익과 지역 이익의 균형과 관련해 동북아에서 지역 이익을 추구한다면 첫 걸음은 남북화해라고 본다. 남북화해가 미·중, 중·일 갈등도 풀 수 있는 첫 단추라는 평가도 있는데?

이수훈 : 그렇다고 본다. 동북아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띄게 된 중요한 단초는 남북이 분단돼있다는 상황 때문이다. 동북아 전체가 통합으로 가지 못하고 분열로만 치닫는 핵심에 남북 분단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대단히 민감한 부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 이수훈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 이수훈 소장 ⓒ프레시안(최형락)

  동북아 질서가 대결적·갈등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으려면 남북관계를 순탄하게 가져가야 한다. 지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 남북 간 고위급 회담 등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들을 평가한다. 물론 상봉 이후에도 북한과 대화·협력은 증진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혼란기에서 우리가 동북아 내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 격랑의 동북아에서 어느 쪽과 손을 잡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유동적인 질서가 형성돼가는 동북아에서 다른 국가에 휘둘리지 않는 국가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우리가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담론을 펼쳐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이런 점을 잘 포착해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남북관계 개선이 국가 전체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동북아의 지역 이익과 남북관계를 잘 접목시키면 막혀있는 경제적 활로를 뚫을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내부 혁신도 중요하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남한뿐만 아니라 남북, 동북아라는 공간이 더해지면 우리의 경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도 경제와 접목시켜 이를 통해 우리의 경제 활력을 찾는다는 구상이었다면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레시안 : 우리의 국익 추구가 동북아 지역 이익과 합치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인가?

이수훈 : 접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 화해협력 질서를 만드는 두 가지의 과제가 있다고 하면, 이것들을 지혜롭게 접목시켰을 때 남북관계에서 진도를 낼 수도 있고 동북아 질서도 통합적·공동체적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프레시안 : 지금은 중·일 간 외교적 갈등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동북아 군사안보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북핵 아닌가? 북핵이 일본 군사주의 팽창에 명분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을 막고 동북아 공통의 지역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북핵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나? 북핵 문제가 상존하는 한 동북아의 안정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이수훈 : 북한과 뭐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북핵 때문에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딜레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6자회담을 재개해야 한다.

  박근혜-오바마, 오바마-시진핑, 시진핑-박근혜 간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중은 한반도 비핵화에 합의했다. 또 이 과정에서 우리는 중국한테 북한에 압박을 가하든 중재를 하든, 어떤 방식으로든 중국이 북핵 문제에 있어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중국은 여기에 부응하듯 북한도 설득하고 6자회담 참가국의 회담 대표 인사들을 만나고 다녔다. 이 과정을 통해 중국은 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제안했고 중재안도 제시했다.

  그런데 6자회담 개최에 대해 한미는 북한의 선제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회담을 열어봐야 결과는 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이 선조치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겠다는 것인데, 북핵 20년 역사를 보면 한쪽이 거부할 경우 회담은 열릴 수 없다. 일방이 다른 일방에게 강요하는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6자회담이 핵 폐기로 가기 위한 틀로서의 의미가 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6자회담은 여전히 북핵 관리의 틀이라는 의미가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제네바 합의 틀을 만들었을 때 적어도 북핵 관리는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더 이상 북핵 능력을 신장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6자회담을 조속히 열어야 한다. 적어도 회담을 여는 동안에는 핵 시계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일단 북핵을 멈출 수 있는 것, 이것만 해도 북핵 관리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005년 체결한 9.19공동성명에 나와 있는 내용이 모두 이뤄져야 핵을 포기할 것이다. 6자회담을 다시 열어서 이 문제를 논의하는 출발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북핵 포기, 북핵 폐기까지 못 가더라도 관리까지는 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처럼 방치해 놓는 것은 아무 대책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프레시안 : 지금이라도 6자회담을 재개해서 9.19 공동성명 또는 2.13 합의 이행을 담보하라는 것인가?

이수훈 : 9.19 공동성명과 2.13합의에 북핵 문제 해결 방법이 다 들어있다. 그것이 포괄적으로, 동시 조정된 형태로 이행돼야 북핵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

  물론 이렇게 돌아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긴 하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틀조차도 없지 않나. 한반도 비핵화나 북핵문제를 진정으로 심각하게 해결해보고자 하면 틀은 6자회담일 수밖에 없다. 남북회담을 한다고 핵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 않나.

▲ 지난 2008년 12월 8일 증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연합뉴스

▲ 지난 2008년 12월 8일 증국 베이징에서 열린 북핵 6자회담. ⓒ연합뉴스

보수대통령도 정상회담 해봐라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은 국익과 지역 이익이 합치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보나?

이수훈 : 사실 통일론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의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잘 추진해나가고 정상회담까지 가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즉 말뿐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실질적으로 수반하는 통일 대박론이라면 평가해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통일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상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주의해야 한다. 북한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남한이 흡수통일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곤란하다. 큰 담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세심한 정책적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프레시안 : 현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쉬워 보이진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세심한 정책적 관리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어떤 방침을 가지고 나가야 하나?

이수훈 : 일단 오는 20일 있을 이산가족 상봉을 잘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곧 있으면 한반도 정세가 엄중해지기 때문이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있고 북한은 핵실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남북관계가 상당히 폭발성이 강한 시기로 진입했다는 말이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고위급회담이 있었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남북관계가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꼭 한 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특히 보수 대통령도 북한 지도자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제반 환경을 조성해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보수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통일 문제든 핵문제든 여러 남북 현안들을 논의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면 다음에 어떤 대통령이 선출된다고 할지라도 큰 정치적 부담 없이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만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도 도발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이전과 같은 도발을 또 저지르면 남한 사회에서 보수, 강경, 온건, 진보를 떠나서 북한에 대해 “쟤들 또 저런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안팎으로 북한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나쁘다는 점을 북한지도부가 깨달아야 한다.

                     <위 글은 프레시안 2014년 2월 17일(월)자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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