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시론] 정일근 교수
[경남신문 시론]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4.01.29 13: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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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의 밥상’을 기다리며

  하얀 제주 수선화의 향기와 자태가 절정인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초청을 받아 해녀들의 밥상을 소개하는 행사를 뜻깊게 참관했습니다. 지금 제주는 제주 ‘해녀(海女)’를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1970년대 1만4000여 명에 이르던 제주 해녀 수가 지금은 4000여 명으로 줄어들고 그마저 고령화로 명맥마저 끊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제주 해녀를 유네스코 등재 준비를 하자 일본도 미에 현을 중심으로 일본의 해녀인 ‘아마(海人)’를 유네스코에 등재시키기 위해 추격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바다에서는 해녀와 아마를 두고 한국과 일본이 그 이름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문화전쟁을 펼치고 있는 셈입니다만, 그 역사와 해양문화적인 성격에서 제주 해녀가 단연 해녀의 발상지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저는 이번 행사의 주제인 ‘제주 해녀의 삶과 밥상’에서 ‘해녀 밥상’에 관심이 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순신 밥상’이 있지만 ‘경남의 밥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순신 밥상에 대해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철저하게 고증을 받아서 재현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순신 밥상은 자신보다 나라를 걱정한 장군을 화려하고 요란한, 음식쓰레기를 만드는 밥상을 즐겼던 인물로 추락시키고 있습니다.

  제주의 해녀 밥상은 진솔했습니다. 바닷속에서 힘든 물질을 해서 전복이며 소라, 해삼, 미역 등을 채취해 나라에 진상하고 가족의 생계를 챙기고 난 다음 해녀 자신에게 돌아오는 밥상은 참으로 소박했습니다. 겉으로는 초라해 보이는 밥상이었지만 해녀 밥상은 오랜 세월 바다와 한 몸이 되어 공존해온 ‘나눔의 정신, 영혼의 숭고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주 해녀 밥상은 해녀와 향토음식 명인에 의해 ‘생명의 밥상’ ‘사랑의 밥상’ ‘나눔의 밥상’ ‘영혼의 밥상’ 등 4가지 주제로 구분, 재현해 놓았습니다. 생명의 밥상에는 보릿고개를 넘겼던 ‘톱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난했던 시절, 바다에서 나는 해초인 ‘톳’의 줄기를 잘라서 적은 양의 쌀과 보리로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던 ‘톱밥’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밥상에는 ‘보말죽’ ‘깅이죽’이, 나눔의 밥상에는 ‘낭푼밥’이 대표 음식이었습니다. 보말은 고둥의 제주도 사투리이며 깅이는 게의 제주도 사투리입니다. 해녀들은 보말과 깅이로 사랑의 밥상을 차렸습니다. 낭푼은 양푼의 사투리인데 커다란 양푼에 밥을 나눠 먹던 해녀들의 공동체 정신이 돋보이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주 해녀들은 자신들을 지켜주는 바다를 위해 영혼의 밥상을 차렸습니다. 제주는 1만8000 신의 고향이라고 합니다. 풍어제에, 영등할망을 모시는 영등굿까지 정성을 다한 최상의 음식을 올렸는데, 제가 보기엔 힘든 시절 해녀들의 밥상은 결국 오늘날 ‘웰빙’으로 ‘슬로푸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색이었습니다.

  다시 이순신 밥상으로 돌아와 해녀 밥상과 비교하면 정체성 불명의 밥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젠가 이순신 밥상을 전문적으로 차린다는 식당을 찾았는데 그건 그저 배부른 밥상이었습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밥상이었습니다. 그날 올라온 반찬 중에 생선살을 기름에 튀긴 ‘생선가스’가 올라와 그 시대에 이런 음식이 있었나 싶어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슬로푸드 운동가인 김종덕 경남대 교수는 ‘의식주가 아니라 식의주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음식을 제일 앞에 두어야 음식문맹자에서 음식시민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경남의 밥상’을 생각할 때입니다. 경남의 먹거리에 대해 고민할 때입니다. 지리산에서 남해 바다까지 정직한 맛을 재현하는 밥상을 차려야 할 때입니다. 다음 세대까지 물려줄 밥상이 필요한 때입니다.

  설날이 모레입니다. 조상들에게 펴는 영혼의 차례 상에,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펼치는 사랑의 밥상에 우리의 영혼과 정신이 담긴 따뜻함이 그릇그릇 그득하시길 바랍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4년 1월 29일(수)자 23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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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진석 2014-01-29 16:31:26
제주의 역사와 해녀에 대한 관심을 더욱더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