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인터뷰] 박재규 前통일부 장관에게 듣는다
[한국경제 인터뷰] 박재규 前통일부 장관에게 듣는다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12.1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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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도 공개 처형···北선 최고권위 도전 엘리트 존재 못해"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 소식이 전해진 지난 13일 서울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40년 넘게 북한을 연구해 온 원로에게도 장성택의 처형은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라고 했다. 

  “뉴스를 보고 장성택이 한국에 왔을 때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보았습니다.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2009년 화폐개혁 실패 책임으로 처형), 박봉주 내각총리, 장성택이 있었는데 이 중 둘이 처형됐지요. 다음에는 누구일까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 총장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할아버지 아버지보다 더 강한 정치를 할 것”이라며 “북한을 우리가 바라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장성택과 인연이 많다고 들었다.

  2002년 마산 방문한 장성택과 … 박재규 총장(오른쪽)이 2002년 11월 경제시찰단 일원으로 경남 마산을 방문한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 부위원장과 찍은 사진. 경남대 제공

 

 

 

  “장성택과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특히 2002년 경제시찰단원으로 경남 창원공단과 마산수출자유지역을 방문했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면서도 남측 인사들과 유연하고 활달한 관계를 유지했다. 자본주의 경제와 경영기법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마산수출자유지역을 적은 외국 자본으로 유치하면서도 성과를 거둔 모델로 장성택에게 소개했고, 이는 훗날 개성공단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장성택 처형의 의미는.

  “실세였던 장성택이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공개적으로 비판 당하고 끌려나가는 모습이 공개되고 급기야 처형까지 당한 것은 최고지도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엘리트들이 존재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이제 북한 내부에서는 장성택의 죄목인 ‘반당·반혁명 종파행위’에 대한 각급 단위의 비판과 사상검증을 대대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세대교체와 김 제1위원장의 우상화 작업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성택 처형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이 후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성택은 2002년 한국의 구석구석을 보고 연구했을 정도로 개혁·개방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졌다. 나도 그를 만나본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 옆에서, 이후에는 김 제1위원장 옆에서 북한의 발전에 대해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많은 기업이 다시 북한 내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 내부 정치 상황이 외자 유치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17일이면 김정은 체제 출범 2년이 된다.

  “김 제1위원장이 짧은 후계기간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안착할지 관심을 두고 지켜봤다. 그는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이후 4개월 만인 2012년 4월 핵심 지위를 모두 물려받으며 권력 승계를 완료했다. 이후 이영호 총참모장을 해임하고 최용해 총정치국장을 내세워 군에 대한 노동당의 통제력을 확보했다. 동시에 50대인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이영길 총참모장을 임명하는 등 군부에 대한 숙청 및 세대교체를 이어가며 인민군을 장악했다. 내각에서도 올 4월 경제개혁 경험이 있는 박봉주를 총리로 발탁하면서 젊은 전문 관료들을 기용했다. 장성택 숙청을 통해 노동당 내 엘리트들에 대한 대대적 개편에 나선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지도자가 2년 만에 당·정·군을 완전히 자기식으로 재편하고 ‘유일영도체제’를 확립한 셈이다.”

▶북한이 ‘핵·경제 발전 병진노선’과 경제 개선 조치를 내놓고 있다. 

  “북한의 외자 유치는 북핵문제가 걸림돌이 돼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 등 주변 정세 개선이 선결 조건이다. 여기에 장성택 처형으로 내부 정치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불확실성과 비핵화 진전이 없는 한 병진노선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김정은 체제의 개혁·개방 정책을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식 모델을 참고해 발전시켜나갈 걸로 본다. 특히 ‘유일영도체제’ 확립 등 체제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 건설에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핵 개발에 의존해 경제 재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비핵화 및 국제사회와의 교류·개방 방향에서 체제 안전 및 경제 회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변국의 경제 협력 없이는 북한의 경제 재건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경제를 개선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북한의 비핵화, 남북관계 개선, 국제사회의 경제 협력과 지원, 개방을 통한 국제사회와의 활발한 교류뿐만 아니라 지도부가 변화에 부응하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한·미·중 등 주변국이 북한의 변화도 유도해야 한다. 결국 내부의 노력과 대외 관계 개선 및 협력을 병행해야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북핵 해결이 동력을 잃은 모양새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유지하는 한 북핵문제의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미·중이 협력해 북한을 계속 설득하고 유인해 비핵화에 호응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특히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균형감 있는 중재 역할을 해야 한다. 중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본질적인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지난 4년간 김 제1위원장 유일지배체제가 유지·정착된 데는 중국의 적극적인 경제 협력의 역할도 컸다. 중국은 북한이 전략적 자산으로 유용한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향후 대남정책은.

  “올 한 해 북한은 최고도의 긴장을 조성하고 개성공단을 중단했다가 정상화하는 등 적극적인 강경·유화 공세를 취했다. 결국 9월21일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남북 관계는 다시 경색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이제 당·정·군을 확고히 장악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내년 봄 또다시 한반도에 안보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한·미에 평화체제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면서 적극적인 대남 유화정책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북한의 병진노선이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북한이 핵문제에 변화를 보이기 전에는 남북 관계에서 큰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해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올 한 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등 안보위기와 개성공단 사태 등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특히 오랜 기간 남북 관계가 정체되면서 남북 간 불신이 깊어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새로운 변화와 관계 진전을 모색하려 노력했다고 본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과거 정부들과 달리 교류·협력과 안보의 균형을 중시하고 있다. 다만 정교하고 구체적인 전략과 발전 방안을 마련해 선제 추진하는 적극성이 아쉬웠다. 비핵화를 논의하는 6자회담 재개, 남북 간 신뢰 조성을 위한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 분야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새해에는 6자회담과 남북 교류·협력을 분리해 투트랙으로 추진하면 좋겠다.”

▶남북 관계 원로로서 당부할 말은.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고 진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호간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립과 갈등, 힘겨루기로는 위기와 충돌만 생긴다.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화와 협력의 공간을 마련하고 미·중 등 주변국의 지원을 이끌어내야 한다. 남북 관계는 더 복잡해지고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대립과 경쟁, 한·일 간 역사 인식으로 인한 갈등, 중·일 간 영토문제, 북한의 경제난과 체제 유동성 등 동북아에 좋지 않은 전선이 생기고 있다. 핵문제에도 여러 도전이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유연성이 필요하다.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실질을 추구해야 한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40년 북한연구 전문가…남북관계 역사 산증인 

  1970년대 초반부터 북한을 연구해 온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다.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극동문제연구소와 북한대학원대학을 설립했고 1999년 12월부터 1년3개월간 통일부 장관을 맡아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총괄했다. 제1~4차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우리 측 수석대표로 나서는 등 남북관계 역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박종규 전 청와대 경호실장(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동생이다.

 △경남 마산(69) △미국 페어레이디킨슨대 정치학과, 뉴욕시립대 대학원 졸업, 경희대 정치학 박사 △경남대 총장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 △북한대학원대 총장 △대통령자문 통일고문 

<위 글은 한국경제 2013년 12월 16일(월)자 08면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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