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경남시론] 정일근 교수
[경남신문 경남시론] 정일근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10.30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롱받는 시인의 사회 경계한다

  지난 대선과 관련,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안도현 시인의 선고 공판이 연기됐다. 시인의 요청에 의해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은 안도현 시인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지만 재판부의 선고는 다음 달로 연기됐다. 일부 유죄 판결이 있어 선고를 연기한다는 재판부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한 기소’라고 비판받아온 검찰에 대해서는 안도현 시인은 물론 우리 시대 시인 모두가 조롱받는 기분이다.

  검찰은 공판에서 시인에게 ‘벌금 1000만 원’을 구형했다. 그것도 ‘개전의 정이 없어 엄벌이 필요하지만 시인의 삶을 존중해 벌금 1000만 원’을 구형했다. 여기서 ‘개전(改悛)’이란 ‘행실이나 태도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르게 고쳐먹는다’는 뜻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 기소인지, 행실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고쳐먹으면 1000만 원을 받지 않겠다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씁쓸하다.

  필자의 생각은 안도현 시인이 기소된 이유는 그가 시인이어서가 아니라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이다. 배심원 전원 무죄 평결에도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그것도 시인이 시나 쓰지 정치를 했다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인이 정치에 관여하면 어김없이 조롱이 따른다. 안도현 시인의 정치 참여와 이번 재판까지 ‘시인이 시를 쓰지 무슨 정치를 하느냐’는 조롱을 수없이 받아왔다.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자 그의 시를 국어교과서에서 삭제하려고 했던 것도 조롱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참기 어려운 것은 시를 쓰는 필자에게까지 그 조롱을 질문처럼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동료 시인이나 문학인들도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시인을 조롱하는 사회는 N.H.클라인바움의 소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배경보다 낙후되고 퇴화된 사회다. 그때마다 필자는 ‘시인은 시만 쓰는 사람이 아니다. 시인도 사람이다’고 항변했지만, 시인을 ‘시 쓰는 사람’으로만 규정하는 사회의 닫힌 인식이 안타깝다.

  안도현 시인의 재판이 열리는 시간에 필자는 요산문학제가 열리는 부산의 한 행사장에 앉아 있었다. 일제와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은 ‘사람답게 살아라’고 했다.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고 했다.

  사람답게 살려는 시인을 조롱하는 사회가 불의에 타협하고 권력에 굴복하는 사회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좋은 시인이 나오며 시가 널리 읽히겠는가. 안도현 시인은 검찰의 기소와 함께 박근혜정부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절필선언을 했다. 제2, 제3의 안도현 시인이 나오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다.

  필자는 최근 모 문학상을 받고 지역주민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색다른 뒤풀이’를 가졌다. 감사는 무슨 감사 술이나 사지, 조롱하는 소리가 문학인들에게서 나왔다. 시인이 시인을 조롱하는 사회에 필자는 과연 시인이란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시인이 몇이나 있는지 궁금하다.

  안도현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고쳐서 필자가 묻는다. ‘시인을 조롱하지 마라/너는/누구의 시집이라도 뜨겁게 읽어본 적이 있는 사람인가.’

  가을이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지나간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라틴어의 구호가 스스로 익어 터지는, 살아있는 시인의 사회를 회복하기 위해 안도현 시인의 좋은 시집들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시집 속에서 오만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시인의 밝고 빛나는 생각을 만나길 바란다. 시를 읽지 못한 채 시인을 조롱하는 일, 스스로의 무지를 드러내고 조롱하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10월 30일(수)자 23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