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문화] 이재성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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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9.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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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고 떠난 바다에서 詩를 건졌다

  본지 신춘문예 출신 이재성 시인
  첫 시집 ‘누군가 스물다섯…’ 발간
  꽁치잡이 원양어선서 쓴 43편 수록

  젊은 시인은 바다에서 7개월을 살았다.

   꽁치잡이 원양어선 ‘305호 창진호’가 그의 집이었다.

   그는 배 위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고, 조타륜을 잡고, 항해일지를 썼다.

   시를 찾아 스물다섯 청춘을 바다에 던진 청년.

   그가 ‘바다에서 꽁치처럼 걷어 올린’ 시어들을 세상에 내놨다.

   창원 이재성(27) 시인의 첫 시집 ‘누군가 스물다섯 살의 바다를 묻는다면’(고요아침).

   2011년 본지 신춘문예로 등단 후 2년 만에 나온 시집인데 시인은 “일찍 처녀 시집을 가진다는 것, 이 처녀성은 영원히 지켜야 할 내 의무이며 항해다”라고 ‘시인의 말’에 썼다.

   그가 바다로 떠난 것은 등단한 그해 봄이었다.

   “꿈이 시인이었는데, 갑자기 성취가 되니 목적지를 잃은 듯 갈팡질팡했습니다. 그때 시를 가르쳐준 정일근 교수님께서 바다로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고, 나가면 뭐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겠다고 했죠.”

   해군 출신이어서 바다 생활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구에서 만난 305호 창진호는 상상과 달랐다. 그는 배를 본 순간 “바다 위에서의 생활이 낭만적인 창작행위가 아닌 처절한 노동의 시간이 될 것”을 직감했다.

   ‘나를 감고 있던 뭍의 쇠사슬 쿵 끊는다/ 양수로 가득 찬 먼 바다가 터진다/ 어디서 피 냄새 바다 비린내가 난다/ 그 바다에 스물다섯 살의 배를 띄우며/ 독한 술잔을 높이 든다, 건배/ 뱃머리 출렁이며 함께 잔을 든다/ 바다가 자꾸만 나를 불렀다’(출항제 중에서)

   예감대로 그의 항해는 녹록지 않았다. 멀미와 해수독으로 신고식을 치르고, 열여섯 번의 태풍에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를 느꼈고, 닷새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며 코피를 흘렸다. 그리고 룸메이트였던 동료의 죽음도 대면해야 했다.

   ‘바다에서 생과 사는 순식간(瞬息間) 그 사이에 있다/ 이등항해사 아지즈가 그 사이에 발을 헛디뎠다// 마지막 숨을 쉬는 그를 인도네시아 고향 방향으로 눕혔다// 나는 아지즈의 잃어버린 꿈을 찾아다녔다//누구는 내 눈에서 불바다를 보았다고 했다/ 누구는 내 눈에서 얼음바다를 보았다고 했다/ (…)대만 선단의 홍등이 조등처럼 펄럭이고 있다/ 바다의 눈물이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붉은 바다 중에서)

   시집은 ‘스물다섯 살의 바다’를 부제로 출항부터 귀항까지의 여정을 1편부터 43편까지 시간대별로 나열했다. 틈틈이 쓴 항해일지 100여 쪽을 토대로 시를 썼다고 했다.

   “사실 배에서는 별도로 시를 쓸 시간을 내지 못 해요. 그래서 작업 중에도 시가 생각나면 페인트펜으로 몸에다 적고 했죠.”

   그는 바다를 떠나 육지로 왔고, 스물다섯에서 이제 스물일곱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그는 바다가 여전히 그립다고 했다.

   “이번에 북쪽으로 다녀왔으니, 다음에는 남쪽 바다로 떠나고 싶습니다. 그때는 원양어선 말고요.(웃음) 앞으로도 계속 바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요.”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9월 10일(화)자 12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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