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중앙일보 시론]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8.0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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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 먼저 강경 대응 자제해야

   남북관계가 갈수록 불신만 증폭되고 갈등과 대결, 불신과 비난으로 채워지고 있다. 교류 협력이 활발하던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더 놀라운 건 강경 대결의 남북관계를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장관급 회담이 무산되고 개성공단 폐쇄가 지속돼도 책임은 북에 있고 우리 정부가 잘하고 있다는 여론이 70%를 훌쩍 넘는다.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역설적이게도 관계 개선의 필요성 대신 대북 강경론과 북한 책임론이 지배적인 여론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사실 이명박정부 5년 동안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대북정책은 총체적 실패로 평가됐다. 그러나 남북관계 파탄은 북한에 대한 염증과 혐오를 더욱 강고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3대 세습을 목도하고 핵실험을 겪고,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을 당하면서, 국민들 사이에선 북과는 잘 지낼 수 없다는 회의가 깊어졌 다. 북한의 명백한 잘못과 과도한 도발이 지속하면서 상호 책임소재를 따져보기 전에 이미 대북 강경론은 정당화돼 버렸다.

 현재의 북방한계선(NLL) 논란과 대화록 파문은 여야, 진보·보수가 모두 NLL을 신성불가침의 확고부동한 영토선으로 인정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왔다. 민주당이 먼저 NLL 수호를 공동선언하자는 마당이다. 이제 누구도 NLL을 북한과 협의의 대상으로 주장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사실상 1992년의 기본합의서 정신보다도 훨씬 강경하고 단호한 입장으로 정리되고 만 셈이다.


 개성공단 실무회담이 결렬돼도 국민은 그다지 애태우지 않는다. 입주 기업인들은 생존의 문제지만 북에 진절머리가 난 국민은 경협이나 공단 회생에 목맬 필요가 없다는 덤덤함마저 보이고 있다. 버릇없는 북한을 혼내주는 거라면 공단 폐쇄도 감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화해 협력과 관계 개선보다 버릇 고치기를 더욱 중시하는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있다. 6·15 시대의 옥동자이자 상생의 경협 모델이었던 개성공단 살리기는 어느 순간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 돼버렸다.

 남북관계가 중단되면 화해 협력과 관계 개선의 중요성이 강조돼야 함에도 최근의 현실은 오히려 대북 강경 노선이 힘을 받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북의 과도한 강경 맞대응이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해 북은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목숨과 생명을 앗아가는 군사적 도발을 서슴지 않았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은 한순간에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실패를 북의 책임으로 결론짓게 했다. NLL 포기 논란도 그 시작은 10·4 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모르면 조용히 있으라는 식의 북의 대남 비아냥이 보수 진영에 빌미를 준 것이었다. 개성공단 파행 사태도 남북의 상호 에스컬레이트 과정이 있었지만 결정적 계기는 북의 급작스러운 근로자 철수 조치였다. 남북관계 경색의 국면에서 이처럼 북이 과도하고 무모한 강경 대응을 강행하면 저간의 과정은 생략된 채 모든 책임은 북에 전가된다.

 결국 남북관계 경색의 과정에서 오히려 국민 여론은 대북 강경과 대결 상황을 지지하게 됐고 그만큼 화해 협력의 정당한 주장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게 됐다. 남북관계 악화가 가져온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역사 유산이 아닐 수 없다. 화해 협력과 평화 공존의 한반도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목표다. 그러나 염북·혐북(북을 싫어함)이 확산한 지금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십수 년 전의 과거 주장과 구호만 반복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대북 포용과 햇볕론의 불씨를 살리려면 북의 강경 대응 자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위 글은 중앙일보 2013년 8월 1일(목)자 29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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