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작가칼럼] 김경식 산학협력단 부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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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7.1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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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마을 귀거래사

   귀거래사는 중국 송(宋)나라 시인인 도연명(陶淵明)의 대표적 작품으로 그가 41세 때 마지막 관직인 팽택현(彭澤縣)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세속과 결별하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읊은 시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이라 읊었다. 제2장은 고향집에 돌아와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絶緣宣言)과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다.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산 중늙은이들의 유년의 추억이 오롯한 가포, 비포, 덕동, 유산마을을 지나 구불구불 고갯길을 넘어가면 황금들판 같은 바다가 펼쳐진다. 곧장 군령 삼거리를 돌아 해양드라마세트장을 오른쪽으로 끼고 돌면 첫 번째 만나는 동네가 바로 명주마을이다. 하루 종일 해가 떠 있어 명주라 부르는 만큼 밝고 따사로운 동네다. 동네 가운데 그림 같은 노송 세 그루가 서 있는 구산면 석곡리 560-2, 이곳이 내가 귀거래사 제1장을 쓰고 있는 곳이다.

   마을회관 앞 바닷가 도로를 따라 여남은 개의 미더덕 좌판이 늘어서 있는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살갑게 우리 식구들을 챙겨주는 아지매가 있다. 아지매 손은 복어다. 까치복같이 거칠고 검은 껍질과 하얀 뱃살을 가진 그 손은 하루 종일 바다 곳곳을 헤엄쳐 다닌다. 더러 버려진 그물 같은 장갑을 끼기도 하지만 그나마 손끝은 미더덕이 다 잘라 먹고 없다. 아지매가 하루 종일 물속에서 건져 올린 것은 가벼운 주머니와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 석양 몇 조각이다. 그래도 그 석양이 있어 얇은 주머니가 서럽지 않다.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용포(龍袍) 같은 석양을 등에 업고 집으로 가노라면 조선낫처럼 굽은 등에 집 떠난 지 30년도 넘은 아들의 체온과 박동이 아직도 느껴진다. 이것이 하루 종일 미더덕을 까며 짠물에 손을 맡기는 진짜 이유다. 자식을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매일 반복되는 어머니들의 성스러운 오체투지, 조금씩 닳아가는 관절의 신음소리와 함께 갯마을의 하루가 저문다.

   그동안 나에게 풍경이 된 이 바다가 그들에게는 삶의 바다였다. 내가 바다에 일상의 짐을 내려놓을 때 그들은 바다에서 가족의 목숨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조금씩 바다에 덜어주면서 그들도 서러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갔다. 이제 이곳으로 돌아와 스스로 삶이 있는 풍경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것은 그동안의 오만을 속죄하고 죽을 때까지 이 풍경 속의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것이다. 지난해 늦가을 이 동네에 조그마한 터를 마련하고 난 뒤 주말마다 부지런히 이 동네를 찾았다. 만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노송과 풀꽃과 돌담과 대나무 숲에게도 부지런히 인사를 하며 내가 돌아오는 날 우리 가족이 되어 반겨 달라고 절을 하고 다녔다.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 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는 이유로 세속과 절연했지만, 나의 명주마을 귀거래사는 오랜 유배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자유를 찾아가는 가슴 뛰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유배는 시작되지만 그중에서도 아버지란 죄명으로 씌워진 30년간의 굴레는 가장 지독한 유배생활이다. 이제 힘들었던 유배생활을 내려놓고 햇살 바른 향리로 돌아와 작은 집을 짓고, 바라는 것이 없어 서럽지도 않은 자유정신을 햇볕 좋은 마당에 널어두고 싶다. 일찍 눈뜬 풀꽃에게 인사하고, 대숲에 걸린 해를 바다 가운데로 밀어 올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눈에 밟히는 것들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는 아름다운 하늘의 귀가를 지켜보면서, 외롭고 고단한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월든 호숫가의 통나무집과 어린 시절 예이츠가 뛰어 놀던 이니스프리 작은 섬같은 이곳에서 지친 영육을 위로하며 허용된 자유, 기만적인 자유가 아닌 진정한 자유를 노래하는 명주마을 귀거래사 제4장을 다시 쓰고 싶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고해성사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작은 사랑방 하나 열어 두고 싶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7월 12일(금)자 22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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