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기고] 김근식 교수
[매일경제신문 기고]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6.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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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자존심 버리고 머리 맞대라

   남북 대화의 장으로 기대를 모았던 12일 당국자 회담이 돌연 무산됐다. 수석대표 직급을 놓고 남북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다 회담 하루 전날 불발로 끝난 것이다. 이번 회담은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남북한 국민은 물론이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래서 예정대로 열리지 못한 회담은 더욱 큰 아쉬움을 남긴다.

   이명박 정부 때도 간헐적으로 남북대화가 있었지만 대부분 결렬로 귀결되는 형식적인 만남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장관급의 고위 채널이고 서울에서 개최되며 남북간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뿐 아니라 쌍방 모두 생산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남과 북은 서로 의도는 다르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

   북한은 핵무장 노선을 견지하면서 다각도의 대화를 시도하려는 목적 하에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협상에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고 한ㆍ미ㆍ중의 대북 압박 공조를 완화시키려고 한다. 한국 역시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긴장을 완화하고 비핵화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의도이다.

   이처럼 의도는 상이하지만 남과 북 모두 일정한 성과와 합의를 내야 하는 현실적 필요는 같다. 북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테스트하고 진정성 여부를 확인하려 하고, 우리 역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북을 상대로 작동가능한지 첫 단추를 꿰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남북이 성과를 내려면 무엇보다 불필요한 기싸움을 자제하는 것이 요구된다. 회담의 목표가 유의미한 합의를 도출하고 얽힌 현안을 해결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위해 신경전과 자존심은 서로 양보해야 한다. 회담 장소나 대표의 직급 문제가 회담 자체를 결렬시킬 정도로 핵심적이고 선차적인 사안이 아니라면 양측 모두 부차적인 이슈와 쟁점은 가급적 양보하는 미덕을 발휘해야 한다.

   특히 보수진영의 자존심의 과잉에 우리 정부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오랜만에 마주앉는 회담장에서 생산적인 성과를 내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군기잡기나 버릇 고치기 차원에서 북에게 불필요한 고집을 내세운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될 수밖에 없다. 김양건이 오지 않으면 회담이 필요없다는 식의 과잉 자존심의 논리야말로 남북대화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보수진영의 회담방해 전술일 뿐이다.

   또한 각각의 의제를 상호 연계시키거나 전제 조건화하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남북이 만나서 다뤄야 할 의제는 각각 성격과 난이도가 다르다. 개성공단 정상화에서 풀어야 할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해결해야 할 이슈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과 인도적 문제와 관련해서 논의해야 할 사안들은 다들 제각각이다. 더구나 북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6ㆍ15 남북공동선언과 7ㆍ4 남북공동성명,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 왕래접촉 등도 이슈의 복잡성과 폭발력이 잠복되어 있다. 따라서 하나의 사안이 해결되어야만 다른 사안이 논의될 수 있다는 식의 전제조건부 협상 방식은 결코 생산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모든 이슈를 한꺼번에 해결해야만 합의 도출이 가능하다는 연계형 접근 방식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합의 가능한, 실천 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부터 차근차근 합의하고 이행하면서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는, 더디지만 함께 가는 한 걸음이 매우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신뢰의 벽돌쌓기도 분명 같은 맥락이다.

   장관급 회담은 포괄적 논의와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의제별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실무회담을 개최해서 의미 있는 실천적 합의를 도출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다. 세세한 각론이 모두 장관급 회담에서 합의되어야 한다면 하세월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6ㆍ12 남북 회담은 아쉽게 결렬됐지만 남북 양국이 대화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남북 모두 자존심을 버리고 역사와 후손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상생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긴장이 고조되거나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하고 관리할 수 있는 당국 간 채널은 매우 유용하고 필수적이다. 현안 해결보다 사실은 남북 대화의 끈을 이어가는 것이 더더욱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위 글은 매일경제신문 2013년 6월 12일(수)자 38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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