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신문 진단] 김정대 교수
[경남신문 진단] 김정대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6.1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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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 뒷산 명칭 뭐가 맞나

정병산이 맞다

   김정대 교수는 정병산은 일제시대 이전부터 등장했다고 반박한다. 그는 가락왕릉기(駕洛王陵記)를 예로 들었다. ‘왕릉은 가야산으로부터 내려와 정병산을 이루고 부 경계에 이른다(王陵…自伽倻山轉上拍換中作精兵山至宇府界)’는 기록으로 보아 김해도호부를 경계로 하는 정병산은 창원대 뒷산인 정병산이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창원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노경종 선생의 묘비에도 정병산이 나온다고 예를 들었다.

   김 교수는 정병산 명칭이 18세기에 이미 지역인들에 회자되고 있었지만, 문헌의 보수성 때문에 전통적인 지리서에는 여전히 전단산으로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그는 창원중앙역에 있다는 못은 이전의 ‘용동못’이 아니라 ‘신리못’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박 원장의 주장대로 창원시청 뒤의 못이 보잘것없는 못이었다면 일제가 1916년에 만든 군사지도에 왜 나오느냐”면서 “이에 반해 신리못 또는 용동못이 이전 용지제이고 인근에서 가장 큰 못이었다면 왜 이 지도에는 나오지 않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신리못은 애초 ‘용동못’으로 1947년 만들어졌고, 지금은 거의 사라진 ‘용동못’은 1968년에 만들어졌다. 이전 지리서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못이었음이 분명하다. 유목정에서 ‘남쪽’으로 5리를 더 가면 있다고 한 용지제는 오늘날 창원시청 뒤에 있는 바로 그 용지호수 위치이다”고 못박았다.

   박 원장은 지금의 대암산을 이전의 전단산에서 바뀐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창원대 뒷산이 부에서 남쪽 방향이라고 하면, 대암산은 부에서 볼 때 더욱 더 남쪽 방향이다. 어찌 그것이 동쪽이 될 수 있는가”라고 반박한다.

   그는 “문헌에 따르면 전단산은 염산에서 왔고 불모산과 봉림산은 전단산에서 왔다고 돼 있다. 창원도호부에서 볼 때 전단산은 동쪽 25리, 불모산은 남쪽 30리, 봉림산은 남쪽 15리가 맞다. 박 원장 주장대로라면 봉림산은 염산에서 왔고, 전단산은 봉림산에서 왔으며, 불모산은 전단산에서 왔다고 해야 하는데 이는 지리서의 기록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학수 기자

   ※박 원장과 김 교수의 재반론은 13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인터넷 의견은 오는 21일까지 경남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knnews.co.kr) 메인화면 ‘진단’ 배너를 클릭하고 기사를 읽은 후 댓글 형식으로 달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위 글은 경남신문 2013년 06월 11일(화)자 6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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