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기고] 송민순 석좌교수
[매일경제신문 기고] 송민순 석좌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5.2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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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을 같은 배에 태워라

   동갑내기로 같이 육사 출신인 아이젠하워와 드골은 2차 대전 때 전우였다. 둘은 전후 미국과 프랑스 대통령으로서 세계 질서를 이끌어가게 된다. 나토(NATO)의 핵 정책과 알제리 독립 문제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자 콧대 센 드골이 "나치를 함께 이겨낸 우리 우정으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있겠느냐"고 친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는 "맞다. 그런데 지금 대서양만큼 벌어진 미국과 프랑스의 이익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답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드러움과 단호함의 이미지로 주요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구현하고자 진력하고 있다. 정상 간 친분은 최고위에서 국가 간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외교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그 친분은 어디까지나 본질적 국익이 서로 조화될 여지가 있을 때 빛을 낸다.

   국익과 친분의 이상적 조합을 염두에 두고 신뢰 프로세스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가 고려돼야 한다.

   첫째, 주변 정세에 대한 보수적인 판단이다. 중국의 대북 정책이 본질적으로 바뀔 것이라거나, 미국이 북한 문제를 내 문제 같이 챙길 것이라거나, 이대로 버텨 가기만 하면 북한은 곧 무너질 것이라고 보는 것 모두가 우리 정책 기초가 되기에는 너무 희망적인 생각들이다. 강의 물결보다는 흐름을 봐야 한다.

   둘째, 북핵 문제에 대한 진보적인 정책 추진이다. 북핵은 한반도 미래를 열어 보려는 우리 노력을 지속적으로 좌절시켜 왔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은 북핵 문제를 우리만큼 긴박하게 보질 않는다. 6월 초 미ㆍ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는 이란, 시리아, 해킹, 무역 등 발등에 떨어진 문제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한반도를 옥죄는 현상을 우리가 바꾸겠다는 자세로 나서지 않으면 미ㆍ중 대화는 실체보다는 모양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셋째,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는 일이다. 2011년 1월 미ㆍ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6자회담과 9ㆍ19 공동선언을 5차례나 언급했다. 북핵 폐기, 관계 정상화, 대북 경제협력, 한반도 평화체제, 동북아 다자안보 대화라는 5대 요소는 양국 이익이 합치되는 최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이행 방안에 대해 미국과 중국 간 타협 영역을 확대시킨 다음에 북한을 설득하고 압박할 수 있어야 한다.

   협상은 서로의 우선순위가 다를 때 진척된다. 한ㆍ미ㆍ중 3국은 공히 한반도 안정과 비핵화를 추구하는 반면 북한은 체제 안정과 생존을 원하고 있다. 협상의 문이 닫힌 건 아니다. 북한 핵 폐기 가능성은 아예 체념하고, 방어무기 체계나 강화하자는 쪽으로 국론을 기울이기에는 이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방미했을 때 현상 유지에 기초한 동맹 강화를 넘어 핵 문제 그림까지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그 정도까지 갈 경황이 없었고, 또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투자 욕구도 떨어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6월 한ㆍ중 정상회담도 지금 구도대로 그냥 가면 6자회담 재개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는 동북아 판도에서 옆가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자신들이 북한에 쓸 수 있는 카드를 한국이 미국과 협의해서 만들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이라도 미국과 의논해 한ㆍ미ㆍ중 3국이 공유할 수 있는 도안을 만들어 6월 말 박근혜 대통령이 친분과 신뢰의 언어로 시진핑 주석을 설득하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한ㆍ미 동맹을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키고, 한ㆍ중 전략적 동반관계를 구축하면서, 핵에서 개성공단으로 이어지는 먹구름을 걷어내는 한반도 프로세스를 가동하는 길이 될 것이다.

<위 글은 매일경제신문 2013년 5월 28일자 38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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