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시론] 정치외교학과 박후건교수
[경향신문 시론] 정치외교학과 박후건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3.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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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반도 평화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최근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발언을 연이어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일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포했고, 7일에는 “침략자들의 본거지들에 대한 핵 선제타격권리를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8일은 한·미연합 키리졸브군사연습이 시작되는 11일부터 “정전협정을 완전히 백지화해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핵 선제타격행사’를 밝힌 북한에 대해 국방부는 “김정은 정권은 지구상에서 소멸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대응하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응징할 것”이라며 만약에 북한이 도발하면 훈련하는 상황에서 바로 응징모드로 전환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대응에는 북한이 자멸적인 군사적 도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이 자리 잡고 있다. 핵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남북한이 보유한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한반도 전체를 몇 차례나 초토화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이것을 북한도 알고 있기 때문에 감히 전쟁을 다시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단지 가정이 아니라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긴장이 고조되는 최근 한반도 상황을 자신의 리더십을 강화하기 위한 북한의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과 안보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인 박근혜 대통령 간의 신경전으로 보고 있다. 단순한 신경전이라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이 남한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전협정은 미국을 위시로 한 연합군 측과 북한 그리고 중국 측 사이에 맺은 것인데 중국은 의용군 형태로 참전하였고 협정 이후 북한으로부터 철수하면서 해체되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전협정의 당사국은 미국과 북한뿐이다.

사실 북한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비록 정전이지만 대치상태를 60년간 지속한다는 것은 허리가 부러지고 골수가 빠지는 것과 같은 고난의 행군의 기약 없는 연속과 같다. 그러나 미국은 휴전 이후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관대한 무시(benign negligence)와 상황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관리하는 현상유지로 대북 정책을 일관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을 남북한 간의 전쟁으로 간주하고 평화협정은 북·미 간이 아니라 남북한 간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위한 회담조차 거부해 오고 있다.

기한 없이 세계 최강대국과 대립하는 정전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북한은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그래서 무시할 수 없는) 핵무기와 그것을 운반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그 제조 능력의 제고를 통해 정전체제를 끝내려고 한다. 북한은 광명성3호 2기를 위성궤도에 안착시키고 제3차 핵실험을 통해 자신들의 군사력이 미국의 안보에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믿고 미국에 대한 압박 강도와 수위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최근 북한의 위협을 단순히 젊은 지도자가 내부결속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전은 “교전 중 어떤 목적을 위해 한때 서로의 교전을 중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정전협정은 한시적이며 의무적일 수 없기 때문에 어느 한 측이 정전협정을 준수하지 않으며 자동적으로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북한의 위협이 단순한 협박이 아니고 미국이 기존의 북한 무시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전쟁 재발의 가능성은 높다.

전쟁은 북·미 간의 전쟁만이 아니다.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한국전쟁의 가장 큰 이해당사자이다. 전쟁이 평화롭게 종결되는 것은 남북한의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떠나 한반도를 기반으로 살고 있는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며 당면 과제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북정책을 전개함에 있어 동맹국인 한국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임을 누차 강조했다. 그의 말이 식언이 아니라면 한국은 한국전쟁의 재발을 방지하고 새로운 차원에서의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데 있다.

-이 글은 경향신문 2013년 3월 11일자 31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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