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대학보 교수논단] 정치외교학과 박정진 교수
[경남대학보 교수논단] 정치외교학과 박정진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3.06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북아 ‘긴장 완화’를 위한 한·중·일 협력과 한국의 역할
   

박정진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래학자들이 전망했듯이 동북아는 세계문명의 중심이 되었다. 한·중·일 3국을 합치면 세계인구의1/3, 국내총생산(GDP)의 1/5, 교역량의 1/6에 이른다.

  그러나, 유럽연합(EU)과 달리 동북아는 아직도 역사 갈등과 영토분쟁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북한핵무기개발과 중·미간 군사·경제적 대립이 고조되면서 냉전시기처럼 한·미·일과 북·중·러 양측으로 편 가르기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UN 안보리의 추가제재 결의안에 대해 한·미·일은 “강한제재”를 주장하고, 북한은 제재에 대한 협박을 하고 있으며, 중·러는 “적절한 제재”를 주문하고 있다.

  동북아의 현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양축으로 세력이 나누어지면서, 현 아베 일본정부는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조어도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상원에 적극적인 도움을 요청하여 ‘국방권헌법 수정안’이 현재 상원을 통과한 상태다. 국방권헌법 수정안의 주 내용 중 하나는 “센가쿠 열도가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적용대상임을 재확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중국의 무력 공격 시 미국이 자동 개입함을 내포하는 내용임을 암시한다. 또한 우익 성향이 매우 강한 일본의 자민당이 7월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할 경우 아베 정부 2기는 대북 제재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서 ‘기술·군사력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을 후원하고 있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미국에게 ‘비대칭 핵전력’을 통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려는 북한을, 일본과 한국을 통해 제재하려 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동북아의 안보 균형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안보전략의 틀 속에 한국과 일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한국이 한·미·일 삼각안보체제 일변도로만 치우칠 경우, 동북아는 세계 문명, 경제의 중심 이동 지역보다는 첨예한 충돌과 대립의 세력 갈등, 분쟁지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안보적 입장에서 한국과 미국의 우방관계는 우리의 안보비용 절감을 포함해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도 매우 소중하다. 그러나 한미 관계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과거의 포석으로 동북아의 현 정세에 의존한다면 한국은 향후 국가의 최고 당면과제인 ‘통일’로 가는 길에 심각한 장애에 부딪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동북아의 갈등과 분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각 국가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역사적 갈등과 분쟁을 ‘긴장 완화’로 가져갈 수 있는 큰 틀이 필요하다. 미국과 중국은 큰 틀에서 지역 내 분쟁이 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잘 조율하는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현재 북·일관계 개선도 중요하다. 물론 현재 자민당의 국민적 지지가 70%을 상회하는 현실에서 개선 시도는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아베 총리가 일본의 조총련 본부 건물에 대한 매각을 단행하려는 움직임 등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그러나 북일 관계 정상화가 진행된다면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북한의 지도자는 빨리 인식하고 협조해야 한다. 일본은 과거에 북한과 관계 정상화의 여러 순간이 있었다. 1990년 9월 탈냉전의 흐름에 따라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의 공동 대표단은 평양을 방문하고 김일성과 회담 후 관계개선을 위한 공동선언을 하였다. 그 후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 후 관계정상을 위한 ‘평양선언’을 발표 하였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해 ‘평양선언’은 빛을 발하는가 싶었으나 ‘메구미’씨의 유골 송환문제로 갈등을 빚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북·일 관계는 답보상태를 겪고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 일본과 북한은 ‘평양선언’에 따른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하였고 2007년 2.13 합의에서는 평양선언에 따라 ‘북·일 관계 정상화 실무그룹’ 설치에 합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관계 개선 시도를 양 정부는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북·일관계의 개선은 곧 북한으로 하여금 미국과 다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통로로 작용할 수 있고 동시에 일본은 이를 통해 동북아에서 한반도를 경유하는 보다 적극적인 경제회복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 역시 영유권 분쟁으로 군사 충돌 일보직전에 있다. 일본과 중국은 영토 문제를 군사적 해법이 아닌 가급적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 간의 군사 충돌을 자칫하면 미국과 중국 간 갈등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일간 과거사와 영토문제도 조속히 풀어야 한다.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라 표현되는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하루 인적교류 15,000명, 연간교역액 1000억 달러 이상을 넘어서고 있다. 그리고 상호 문화개방, K-pop 한류의 일본 확산 등으로 양국간 교류는 이미 두 국가의 증진된 관계를 증명해 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인식에 대한 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한일 양국 관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올바른 역사 인식과 진실한 반성을 보여줄 수 있다면 일본은 한일 관계의 진전 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국가적 입지를 더 공고히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서독 총리는 과거 나치의 유태인 학살 행위를 사죄하는 뜻으로 땅바닥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독일의 위상에 대한 유럽의 시각이 바뀌었음을 일본은 한번쯤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우리의 ‘주도적 역할’이다. 현 정세에서 북한핵에 대한 제재를 넘어 북한을 변화로 이끌 수 있는 역할을 자처할 국가는 한국뿐이다. 물론 현재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우리나라의 새 정부로서 북한을 제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대화의 문이 열리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과거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것과 같이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라고 볼 때, 한국은 북한이 지금과 같은 체제 보장의 딜레마 상태에서 지속적인 핵개발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고립의 길을 택하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제재가 계속될수록 북한은 과거 핵개발 때도 그래왔듯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계속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 북한은 더 깊게 고립될 것이고 결국 미국이 고려하는 ‘군사옵션’에 의해 전격적인 제재를 당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갈 경우 우리의 남북관계와 한반도의 안보는 한층 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 ‘나홀로’ 남북관계 개선만을 위해서 국제 질서를 역행하여 행동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은 한·미 공조를 강화하고, 중국과는 경제와 문화 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이해와 협조를 얻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동의를 얻는 ‘과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1970년대의 기본조약 이전 다자안보협력의 기본이 되었던 전승 4대국의 베를린 합의와 전략무기감축협정(SALT I), 상호균형감군협상(MBFR)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유럽은 이러한 논의가 분단국의 중심이었던 서독의 세밀한 외교에 의해 진행되었다. 서독의 외무장관이었던 에곤 바(Egon Bahr)는 “동쪽 지역은 소련의 동의하에서만 변화될 수 있다”는 사고 하에 소련의 동의를 얻어낸 모스크바 조약을 합의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NATO와 미국을 안심시키기 위해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에게 서독의 ‘신동방정책’을 충분히 설명했고, 이후 미국 측에 전쟁 보상 명목으로 1억6천만여마르크의 보상금도 제공했다. 미국과 소련의 동의를 얻은 서독은 이후 유럽의 평화와 ‘긴장완화’에 동서독이 공헌할 것이라는 외교 활동을 통해 유럽을 공동체로 묶는데 기여하였다. 당시 서독의 외교는 순차적으로 진행된 모스크바 조약(1970. 8. 12 조인), 바르샤바 조약(1970. 12. 7 조인), 프라하 조약(1973. 12. 11 조인), 4대국 베를린 협정(1971. 9. 3 조인, 1972년 6월 3일 4국 외상 최종의정서 조인 이후 발효)의 직·간접적인 성과와 성공적으로 ‘연계’되어 진행될 수 있었다. 위의 조약들을 바탕으로 동·서독 양 정부는 우편협약(1971. 9. 30), 서베를린 출입 및 서베를린에서 동독 출입 협약(1971. 12. 20), 도이치 내부 통행 협약(Vekehrsvertrag: 1972. 5. 26)을 4개국 협약의 부속협약으로 이끌어 내었다. 마침내 1972년 12월 21일에는 ‘동서독 기본조약(Grundlagenvertrag)’을 조인했다. 이후 기본조약은 이후 통일까지 동·서독 교류의 근간이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도이치의 분단을 해결하려는 국내외적 노력에서 ‘다자안보협력’의 불씨가 되었다는 것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은 동북아 국제 질서의 연착륙을 전제로 한 ‘지속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동북아의 복잡하게 얽힌 질서를 남북관계 개선과 ‘연계’하여 풀 수 있는 역할을 자처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새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중요한 열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과거 정부와는 달리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인한 도발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문제와 남북관계 문제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는 틀을 가지고 있다. 또한 ‘한-미-중 3자 전략 대화’ 역시 단순히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를 미국· 중국과 논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북핵 문제 해법과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진지하게 양 국가와 논할 수 있다면,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통한 남북 관계 개선과 동북아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대화를 통해 현재 남북관계와 동북아 국제 질서의 틀에서 북한의 핵 문제를 움직일 수 있는 대상국이 한국과 중국이라는 것을 정부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동북아 화해·협력을 전략 대화를 통해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럽 연합 역시 다자안보협력의 기초가 된 ‘석탄철강공동체’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경제협력’과 ‘긴장 완화’를 모토로 하여 60년의 긴 시간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독일역시 ‘두 개의 도이치 관계’를 그와 ‘연계’하여 오랜 시간을 거쳐 유럽의 평화와 안정, 긴장완화에 기여하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현재 동북아는 ‘먼 미래’에 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먼 미래’를 위한 선택의 기로가 ‘긴장완화’를 통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성공적 안착일지 아니면 동북아 국제 정세를 따라간 갈등과 충돌일지는 이제 그 ‘과정’에 달려있다. 미래를 위한 한반도 평화, 번영이 현재 동북아 긴장 완화와 ‘연계’할 수 있는 외교적 과정을 통해 동북아의 경색된 관계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북한 역시 ‘먼 미래’에 핵을 포기하고 경제적 개혁 개방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젝트”는 그 핵심의 자리에 있다. 신뢰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한국이 관련국들의 신뢰 증진에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그 안에서 최종적으로 북핵 문제가 마무리 될 때 우리는 새로운 아시아의 다자안보협력의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 위 글은 경남대학보 2013년 3월 6일자 7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