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이 먼저 손 내밀어 ‘신뢰의 끈’ 이어야 - 김근식 교수
南이 먼저 손 내밀어 ‘신뢰의 끈’ 이어야 - 김근식 교수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3.02.0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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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승리와 기쁨도 잠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제 임기 동안 풀어야 할 무거운 과제를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위기라고 하는 작금의 시대, 외교안보적 환경 역시 중차대한 전환점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각축 속에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와 우경화가 가속화되는 동북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무사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이끌어가기는 그리 쉽지 않다. 김정은의 북한은 여전히 유동적이고 한반도 평화는 아직도 위험하기만 하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사라졌고, 한반도 정세에 대한 개입력은 축소됐으며 대북 영향력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평화가 훼손되고 안보에 무능했다. 한반도 정세의 주인공이 아닌 구경꾼이 돼 버린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의 총체적 실패는 사실 남북관계 중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박 당선인이 이끄는 새 정부는 파탄지경에 빠진 남북관계를 올바로 개선하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북의 도발을 억지하고 서해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일은 남북관계 정상화에서 시작한다. 북핵과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증진시키는 일도 남북관계 복원에서 출발한다. 김정은의 북한을 잘 관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도, 미국과 중국의 협력을 증진시키고 중-일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는 ‘동북아 평화 촉진자’의 역할도 모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마침 박 당선인도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 이른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핵심 공약으로 내놓았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가듯이 상호 신뢰를 구축해야만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신뢰는 말로만 가능하지 않다. 활자화된 공약이 저절로 신뢰를 담보하지 않는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일관된 의지와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상생과 공영의 대북정책’도 말로는 손색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상생과 공영을 시작도 못한 채 적대와 갈등으로 일관하고 말았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여전히 북한의 양보와 선(先)행동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2011년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북이 약속을 지켜야’ 남북간 신뢰가 가능하다. 대북 인프라 지원과 경협 활성화는 비핵화와 남북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어야 가능하다. 결국 북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신뢰는 시작도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5·24 대북 제재 조치만 해도 북한의 선사과 없이는 상호 신뢰 형성이 무망하다. 박 당선인이 밝힌 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갈 수 없다’면 사과와 재발방지 없이 5·24조치를 풀고 가기 힘들고 이는 곧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자리 잡게 된다. 금강산 관광도 당장 재개가 아니라 북한의 행동을 선조건으로 요구한다면 남북관계는 처음부터 삐걱거릴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이후 북의 제멋대로 강경대응은 신뢰 형성의 첫 단추조차 끼우기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까칠한 북한을 상대로 힘겨운 기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은 인신공격성 비난이나 대남 강경 조치 등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때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가시적 성과는 정부 출범 후 2년이 지나서야 나왔다. 지구상 유례없는 북한을 상대로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내려면, 머릿속으로만 신뢰 구상을 할 것이 아니라 대결상황과 돌발사태에서도 화해·협력하겠다는 일관된 의지와 행동을 고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뢰를 위해 북의 행동을 기다릴 게 아니라 박 당선인이 먼저 손 내밀고 신뢰의 끈을 제공해야 한다. 어렵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 필자 소개 ::

  서울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태평화재단 연구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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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동아일보 2013년 2월 1일자 28면에서 발췌한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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