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 산문 '시인이 겪은 포로생활' 발굴
김수영 시인 산문 '시인이 겪은 포로생활' 발굴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11.01.1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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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1일 연합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http://app.yonhapnews.co.kr/YNA/Basic/article/new_search/YIBW_showSearchArticle.aspx?searchpart=article&searchtext=%ea%b9%80%ec%88%98%ec%98%81%20%ec%8b%9c%ec%9d%b8&contents_id=AKR20110111180400052

(창원=연합뉴스) 김재홍 기자 = '풀'의 시인 김수영(1921-1968)이 6.25전쟁 당시의 포로체험을 쓴 미공개 산문이 공개됐다.

   11일 최근 근대서지학회(회장 전경수)가 펴낸 '근대서지 2010' 제2호에는 김수영의 산문 '시인이 겪은 포로생활'의 전문과 이를 분석한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박태일 교수의 '김수영과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라는 제목의 글이 함께 실렸다.

   산문은 6.25전쟁 당시 해군과 해병대의 통합 기관지였던 월간 '해군'에 게재됐던 것으로 2009년에 처음 공개된 시인의 또 다른 산문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 보다 2개월 먼저 발표된 것이다.

   6.25전쟁 직후 북한군으로 끌려갔다가 포로수용소 생활을 한 시인은 1953년 '해군' 6월호에서 원고지 30매 정도의 분량의 산문을 통해 거제리(지금의 부산 연제구 거제동)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생활을 전한다.

   특히 시인은 "거제리 수용소에서 나는 삼 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게 되었다"고 밝혀 포로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생활이 짧은 기간이었음을 알게 한다.

   시인은 글머리에서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만족시켜 준 것이 이 포로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이태원 형무소에서 인천 포로수용소로 인천 포로수용소에서 부산 서전병원으로 부산 서전병원에서 거제리 제十四야전병원으로-가족 친구 다 버리고 왜 나만 홀로 포로가 되었는가!"라며 포로 신세를 한탄했다.

   또 "나는 울었다. 그들도 울었다. 남겨 놓고 간 동지들은 모조리 적색 포로들에게 학살을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아주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었다...비밀선봉대를 조직하려고 결심하였다"며 반공 투쟁에 나섰다는 진술도 보인다.

   시인은 '부산 거제리 포로수용소'에 대한 회상도 담았다.

   "포로생활에서 거제리 十四야전병원은 나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거제도에 와서 보니 도모지(도무지) 살 것 같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너무 서러워서 뼈를 어이는 서름(설움)이란 이러한 것인가! 나는 참다못해 탄식을 하고 가슴이 아프다는 핑계로 다시 입원을 하여 거제리 병원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박태일 교수는 "산문이 남한 사회에 새로 편입된 뒤 몇 달 지나지 않은, 그것도 전쟁 공간의 공공 매체에 올린 진술인 까닭에 김수영의 참된 모습이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며 "김수영 이해의 출구가 아니라 새로운 들머리를 제시하는 글"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어 "시인이 겪은 포로생활의 발굴ㆍ공개로 말미암아 김수영 초기 문학뿐 아니라 임시수도 세 해에 걸쳐 이뤄진 피란지 부산 지역문학과 매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pitbul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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