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 그리운 사람...
마음과 몸의 너그러움과 통이 큰 인품을 갖춘 김성률 교수가 떠나 간지 2달여가 지났다. 그를 그리워하는 친구요 동료로서 글을 엮는다. 그는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선천적 무골의 기풍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다.
사회와 국가가 모두 어려울 때 그는 경남대학교의 씨름 선수들을 각처에서 모아 입에 풀칠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가며 헌신한 희생의 대표였다.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의 일이었으므로 그는 묵묵히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한 끼에 56인분의 식사를 해야 하는 장사들을 67명씩 거느리는 대장이었다. 그 힘든 시기에 처음으로 TV 중계가 씨름계에 시작될 때 조건이나 후원이 우리보다 나은 학교였던 Y대학교, D대학교와 같이 우수한 전통의 씨름강호를 모두 제치고 대한민국을 제패하는데 성공한 걸 잘 기억하고 있다네. 당신 자신이 천하장사를 10년 가까이 했던 천하대장군이었던 그 당시에는 어깨도 으쓱대며 거리를 활보하기도 했었지?
그는 참으로 말이 없는 장승같은 사람이었지만 "내유외강"의 전형적 대장군이었다.
시대를 잘 타고날 수 있었거나, 100年만 더 빨리 태어났다면 을지문덕 장군과 같은 큰 인물이 되어 이 나라의 기둥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130Kg의 거구였지만 축구나 테니스를 좋아할 만큼 유연하고 빠른 기민한 몸을 소유했고 바둑을 좋아해 아마추어 몇 단의 경지에 올라 머리가 비상함도 소유한 사람으로 모든 일을 대처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고 인간관계나 일 처리에 있어 다양한 유연성도 있었다.
70년 초 우리가 생활하던 완월 캠퍼스 시절, 비가 오는 날이면 돝섬 옆에서 때로는 진해만에 있는 등대 앞까지 씨름 선수들과 테니스 선수들(당시 2개부가 전국을 제패했던 운동부)까지 싣고가 된장과 소주 4홉드리 5BOX를 모두 비우며 앞 바다의 도다리와 상어 새끼까지 막장으로 찍어 먹던 추억들이 가슴에 아련하기만 하다.
김성률 교수 (아니 우리에게는 "김 장군")
그는 타향에서 유학 온 테니스부 선수까지 어려움이 있을라치면 항상 앞서 해결해 주며 요즘의 해결사모양 일처리도 능했고 가슴 넉넉한 사람이었다. 그가 떠나는 날 서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하늘도 그의 죽음을 슬퍼해서 그런 걸까? 오랜만에라도 우리의 고향 마산을 지나거나 또는 방문 할 때마다 그가 있어 항상 향수의 애교심이 깊이 살아나고 했는데, 이제 그가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으니 애틋함을 어디서 찾노? 친구야 멀리 하늘나라에서라도 그 큰마음과 덕장의 혼으로 발전하는 경남대학교를 항상 지켜주게나 아마 지켜줄 것을 믿고 있네.
오늘 우리 경남대학인들은 모두 그의 큰 공적과 훌륭했던 삶을 흠모하며 그의 명복을 빌어줄 것이고, 가슴 메이며 가슴 쓰린 아쉬움 속에 함께 통곡 한다네.
부디 편하고 좋은 형이상학의 세상에서 고인의 뜻대로 모든 걸 이룰 수 있는 그런 세상이 펼쳐지기 바라네. 훗날 언젠가 그곳에서 만날 때는 옛날의 마산생활을 회고하고 벗하며 한잔 기울이기를 약속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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