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경남대학교 60년사(6) 5월 20일, "개교기념일"의 역사적 의미
다시 읽는 경남대학교 60년사(6) 5월 20일, "개교기념일"의 역사적 의미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6.06.0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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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은 우리대학의 개교기념일이다. 일반적으로 개교기념일은 설립 인가를 받은 날로 하든지, 아니면 행사를 하기 좋은 날을 선정하여 정해진다. 우리대학은 1946년 12월 18일에 인가를 받았다. 그런데 개교기념일은 왜 5월 20일일까? 추운 겨울인 12월 18일, 그것도 방학 중에 개교기념 행사를 하는 것보다는 행사를 하기 좋은 5월 20일을 개교기념일로 삼았다는 추론도 가능할 것 같다. 그렇더라도 왜 20일일까? 하는 의문에는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답은 초창기 우리대학의 역사에서 나온다. 지난호까지 살펴 보았듯이 우리대학이 지나온 역사는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해방후 최초의 사립대학으로서 우리대학과 최초의 국립대학으로서 서울대학교가 동시에 개교하였다. 하지만 당시 미군정은 우리대학의 개교가 있은지 몇 달이 지난 12월 18일에야 인가를 내어 주었다. 인가 당시 정식 교사도 없는 상황에서 서울 내수동의 보인상업학교 교사를 빌어 사용하다가 1947년 10월 3일, 미군정의 허가를 받아 동월 5일부터 정식 교사를 사용하던 중 미군정에 의해 쫓겨나기도 하였다. 1948년 2월에는 창성동에 새로운 교사를 마련하고 동년 8월 10일에는 정규대학으로 승격, 인가되어 발전의 길을 모색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부산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세가 호전되자 합천 해인사로 이전한 우리대학은 빨치산의 습격을 계기로 진주의 가교사로 이전했다가 1955년 제정 공포된 대학설치기준령에 의해 안정된 정착지로 마산을 택하여 이전하여 왔다. 하지만 마산으로 이전하였다고 해서 우리대학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61년 11월 18일에는 사립대학 정비안에 의해 신입생모집을 중지 당하기도 하고, 대처승과 비구승간의 분쟁, 종단 비종단간의 분쟁, 부실한 재단, 관선이사 파견 등 우리대학에는 시련이 계속되었다. 우리대학의 평탄하지 않았던 과거는 재단법인 국민대학관, 재단법인 국민대학, 재단법인 해인사, 재단법인 해인학원, 학교법인 해인학원, 학교법인 삼양학원 등 1960년대까지 우리대학을 경영했던 많은 법인의 명칭에서도 추정이 가능하다.

결국 1967년 12월 22일, 학교법인 해인학원 임시 이사회는 마산대학을 분리한다는 정관 개정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1968년 2월 12일에는 우리대학의 운영권 및 그 재산 일체를 학교법인 삼양학원에 양도하였다. 이 삼양학원 체제에서 우리대학은 교명도 경남대학으로 개칭키로 하고, 종합대학 승격의 웅대한 포부아래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삼양학원 또한 학교경영의 모체인 재단의 기반이 확고하지 못하여 곧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산지역 유지들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향토 교육사업에 뜻을 둔 박종규(朴鍾圭)씨가 1970년 2월 18일, 이사장에 취임하고, 같은 해 5월 20일에 삼양학원을 경남학원으로 개편하여 우리대학은 제2의 창학기를 맞게 되었다.

이후 우리대학은 1971년 12월에 교명을 경남대학으로 변경하고, 다음해에는 병설 유치원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1973년 1월에는 경영대학원을 설립하였으며, 동년 12월에는 현재의 월영동으로 교사를 이전하였다. 1973년말에는 중앙중학교와 마산공고를 경영하던 학교법인 무학학원이 심각한 경영난으로 우리 재단에 병합을 제안, 결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학원장 제도가 신설되었다.

경남학원의 각급학교를 통괄 지휘 및 관장하는 학원장은 우리대학을 비롯한 각급학교 및 경남학원이 유지경영하는 일체의 부설기관의 효율적인 지도운영 및 합리적인 경영육성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그리하여 1973년 12월 1일, 박재규(朴在圭) 교수가 학원장에 임명되었다. 학원장 체제하에서 우리대학은 1976년에 대학원을 1979년에 교육대학원을 설치함으로써 종합학원으로서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우리대학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계속하여 1982년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즉, 5월 20일은 우리대학 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된 날이다. 이날을 개교기념일로 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일인 것이다. 1975년 5월 27일에 개최된 교수회의에서는 대학교육개혁위원회가 부의한 5월 20일을 '경남학원의 날'로 제정하는 안을 이론(異論)없이 확정하였다. 아울러 매년 가을에 개최하던 '경남학원제'(한마대동제의 옛 명칭)도 1976년부터 경남학원의 날에 개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한마대동제 변천을 살펴보면, 한마대동제는 1971년 10월의 '제1회 마산대학 축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974년의 제4회부터는 '대학축전'이 '경남학원제'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6년의 제6회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남학원의 날' 제정을 계기로, 이때부터 봄에 축제가 열렸다. 1978년 제8회는 '학원제'의 축제 공식명칭이 대학은 '월영축전'으로 전문학교는 '팔각축제'로 됨에 따라 대학축제의 성격을 보다 뚜렷이 하였다. 1981년 제11회 축제는 월영축전에서 한마축전으로 개칭되었다. 1986년의 제16회 때부터 그 명칭이 한마대동제로 변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상민 연구위원(기록물관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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