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 장지연과 친일문제
언론 : 장지연과 친일문제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12.0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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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대표적인 언론인 위암 장지연은 개신유학자로서 언론계에 투신하여 자강사상과 운동을 전개하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논설 '시일야 방성대곡'을 게재하여 언론인으로서 강한 역사적 족적을 남겼다. 언론인 장지연에 대한 친일행적의 구체적인 사료와 이를 보고하는 논문들이 사회이슈에 논거로 인용되고 또 이 때문에 한말 언론계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했던 언론인 장지연의 사상과 행적이 사실상 재평가되고 있는 현실은 근대 한국언론사를 조망하는 시각에도 매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지연에 대한 언론사적 평가는 한국근대언론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정립하기 위해서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지연의 근대인식은 자강론적 민족운동인 친일행적으로 이르게 되는 변화의 과정에 있어서 그 한계를 드러내었다. 장지연은 유교의 변통을 강조하고 한편 시세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는 유교와 유학자를 비판하면서 실학의 경세학에 뿌리를 두고 개신유학자로 활약하면서 자강주의 운동을 펴 나갔다. 그러나 일제의 강점이 본격화되고 국권을 상실하자 자강주의는 그 실을 잃고 일제의 치하에서 좌절된 우승주의, 즉 오랜 시간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루려던 실력양성론의 모습을 띠게 되는데, 여기에 들어 있는 사상의 근저는 자강주의에 동력을 제공하였던 사회진화론이었다. 이후 장지연은 변법론적 자강주의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세계관과 결합하여 변질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유교의 변통론에 더욱 함몰하게 되었다.

장지연이 주창하고 있는 언론사상은 근대적인 자유언론의 이상을 어느 정도 보여 주고 있는데 근대적인 언론자유론이나 언론의 역할 및 기능, 언론 대 정부의 견제와 대립과 같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장지연의 언론관은 기본적으로는 유교적 史官觀에 입각하여 정립된 것으로 자강주의적 애국계몽운동기간이나 그 후의 문필활동에서도 국민교화적인 계몽적 내용을 주조로 하고 있다.

장지연의 근대인식의 한계와 사상적 변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에 지식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좀 더 철저한 탐구가 필요하다. 장지연의 좌절한 실력양성주의가 1920년대 이후 팽배한 식민지시대 실력양성주의와 친일, 식민지 매판세력으로의 변화에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장지연의 친일행적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을 제대로 가늠하는 데 중요하다.

김남석 교수(정치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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