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기념 제35회 한마백일장 산문부 장원
한글날 기념 제35회 한마백일장 산문부 장원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10.1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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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권 - 최현미(고성고·2)

나는 복권이다. 대박나기 위해 1/4천7백만 명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는 영광의 순간을 꿈꾸는 그런 복권말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복권이다. 학비, 운영지원비, 급식비, 생활비라는 주식을 투자하는 우리 부모님 그리고 지식, 정보를 투자하는 학교 선생님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당첨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복권을 산 구매자로부터의 사랑과 대견스러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급된 후, 나는 처음으로 내가 복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수업 중, 사회문화 선생님께서
"니들 이렇게 편하게 공부하는 것이 누구 덕이냐? 이게 다 논에서 농사지으시고, 땀 흘리며 일하는 너희 부모님 덕이야! 부모님께서 열심히 일해서 니들 뒷바라지 해주는데, 이렇게 자도 되겠어?"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내가 좋은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땀 흘리며 일하시는 우리 부모님 덕택이었다. 그러나 나는 단지 감사하게만 여길 뿐, 대박을 터트릴 준비는커녕,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오셔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목이 말라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데, 들리는 대화 소리.
"우리 첫째 딸은 교사가 되어서 지금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있다아이가. 둘째 딸은 이제 준비 중이고, 딸내미 공부시켜서 덕 볼 줄 누가 알았노? 울 아가 첫 월급 타면 내 제주도 보내준다카더라. "
우리 어머니께선 그저 웃고 계실 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그저 공부하는 척했던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잠시 후, 아주머니께서는 가셨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한숨을 쉬고 계셨다. 어머니도 내가 공부하는 척하고, 속으로는 이 곳 저 곳 놀러 다닌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꾸중을 듣기 위해 어머니께 가서 앉았다.
"어머니, 죄송해요."
어머니는 그저 웃으면서
"니가 힘든 거 안다. 저렇게 자기 자랑만 할 줄 아는 사람들 언젠간 후회하게 될끼다. 니도 남한테 보일라고 하지 말고, 니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거 해라. 공부를 못 한다고 해서 다 못 하는 건 아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제?"
어머니께서는 꾸중 대신에 나의 인생 계획을 바꾸는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아마 그 때 어머니께서
"좀 잘하지 그랬니? 니가 그러니까 엄마가 내세울 게 없잖아."
라고 말씀하셨다면 나는 여전히 공부하는 척 했고, 그런 어머니를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내가 공부를 못 한다고 야단을 치지 않으셨고, 나의 기분이 상할까봐 더욱 더 나를 격려해주셨다.

그 동안 내가 저질렀던 일들이 떠올랐다. 책 산다고 해놓곤 친구들과 노래방 가고, 수업시간에 소설책을 읽고, 언제나 밖을 꿈꾸었던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꼭 대박이 터져서 어머니의 축 쳐진 어깨를 쫙하게 펴드리고, 내 꿈을 이뤄서 얻은 첫 월급으로 제주도 여행, 아니 유럽 여행도 보내 드릴 것이다. 그러기위해서 나는 대박이 터져야 한다. 나에게 많은 투자를 한 부모님과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나는 꼭 대박을 위해 스스로 훈련할 것이다.

나는 복권이다. 대박나기 위해 1/4천7백만 명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는 영광의 순간을 꿈꾸는 그런 복권말이다.


산문부 심사평 - 최재남·김정대 교수(인문)

작품수준 여느 해보다 뛰어나
진지한 사고와 다양한 관심사 보여줘


산문부문은 가을처럼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무엇보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였고, 작품 수준도 여느 해보다 뛰어났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진지한 사고와 다양한 관심사를 보여주었고 갈래 또한 여럿이어서 심사위원들을 흥분하게 했다. 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문학에는 더욱 관심이 없다는 우려를 잠시 잊을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우리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작품은 고성고 최현미 학생의 '복권', 성지여고 강아영의 '가방이야기', 안양예고 신솔잎의 '가방'이었다. 장원작인 최현미의 '복권'은 선명한 주제와 간결한 문장, 무엇보다 고등학생다운 순수함이 돋보였다. 신솔잎의 '가방'은 부모님의 사랑을 부각시킨 점이 돋보였는데 소설로서의 구성력이 조금 부족한 것이 흠이었다. 강아영의 '가방'은 글이 힘도 있고 상상력도 풍부했지만 주제의식이 조금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입상작이 아니라도 좋은 글이 많았다. 수상하지 못한 학생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런 행사를 계기로 우리 학생들이 책읽기와 글쓰기에 좀 더 관심을 가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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