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소설 연구] 바다, 그 허구적 상상의 세계 - 에로스적 모방의 바다
[해양소설 연구] 바다, 그 허구적 상상의 세계 - 에로스적 모방의 바다
  • 경남대인터넷신문
  • 승인 2005.09.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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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과 공포로 삶을 자극하고 문학적 상상력 일깨워


Ⅰ. 문학 상상력

여름 휴가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땀을 흘리면서 온종일 불볕 고속도로에서 시달리면서도 바다를 찾아간다. 왜 다들 그렇게 바다로 달려가는 것일까. 바다의 그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유혹하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들로 하여금 바다에 가 닿지 않으면 못 견디게 이끄는 것일까.

바다는 우리들의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내내 그렇게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환희에 찬 기쁨으로, 혼자서는 풀 수 없는 울적함으로, 시퍼렇게 누워 있는 바다를 찾는다. 그곳에 가면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우리가 만나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그곳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진작부터 우리들 각각의 마음에 간직해 있던 바다 그것임을 본다. 그것은 헤아릴 수 없는 모습과 감촉과 느낌들로 떠오른다. 그것이 바다가 우리들 마음에 각인된 상상이다. 그것을 떠올리는 우리의 의식작용이 바로 상상력이다.

날마다 바라보는 경남/마산의 바다는 우리들에게, 작가들에게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킬까.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다시 우리 독자들에게 아름답고도 난폭하고도 무시무시한 파괴적 폭군으로서의 상상력을 일으키게 할까. 의식현상으로서의 상상력 연구의 대가인 바슐라르는 바다를 부드러운 물과 난폭한 물로 나누고 작품 속에서 물의 이미지를 읽어내어 우리들의 마음에 상상력을 일깨워준다. 불어로는 바다가 곧 여성, 어머니를 뜻한다고 한다. 분명 평소에 보는 마산 앞바다는 부드러운 모성의 이미지로 우리들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또 바다는 태풍 매미 때 우리들 도시를 짓밟고 성난 폭군처럼 군림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마산의 바다는 호수처럼 아름다운 서정적 상상의 대상으로 노래되었다. 결핵문학과 궤를 같이하는 바다는 산장에 고립된 외로움과 각혈과 죽음의 두려움을 안은 채 각혈로 바라보는 그 바다는 아무래도 기대고 싶은 모성의 바다로 원망(願望)되어지지 않을 수 없다. 거창에서 나서 마산에서 자랐던 지하련이 호수같은 바다의 아름다움을, 결핵요양원에서 일년 여를 지냈던 나도향이 애잔함과 쓸쓸함의 마산 바다를 그렸다. 이제하의 바다 역시 부성(父性)의 조포성(粗暴性)에 맞서는 모성의 부드러움과 에로스적 욕망으로서 우리들의 외디푸스적 무의식의 상상력을 일깨우고 있다(「기차, 기선, 바다」).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그 백일몽 같은 몽상(夢想)에서 작가가 길어내 올리는 상상력의 세계는 다시 한번 우리를 애잔함과 후끈한 열기로 에로스적 욕망의 쾌감에 뒤흔들려 온몸을 전율케 한다.

Ⅱ. 모성의 바다

여기서는 바다를 환상과 에로스적 모성의 상상력으로 현동화(現動化)한 삼천포의 김인배 작품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그의 소설은 남해안 바닷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소설의 구체적 지리적 공간은 이미 현실의 그 공간이 아니라 작가가 아이 적부터 마음속에 길러온 환상의 섬과 바다와 등대로 자리잡아 있다. 작가는 그것을 환상과 에로스의 욕망으로 현동화한다. 작가의 몽상의 삼천포는 늘 늘어나면서도 줄어들며 변형한다. 작가는 「환상의 배」에서, 주인공 '나'가 공부보다는 줄곧 선원이 되기를 꿈꾸며 법관이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와 맞서온 것을 그의 마음속에 자리한 바다 때문이라 말하다. "내 어린 영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끼친 그 바다"가 전해주는, 마음에 자리한 그리운 그 모든 것들 때문이며,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살아 '나'를 삼천포로 이끄는, 그것은 "끈끈한 소금기를 품은 바닷바람"과 "저 파도 소리의 오묘한 의미"이라 한다.

「등대곶」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지예의 앞에 놓인 삶의 모습은 끊임없는 파도소리와 반복되는 무적(霧笛), 고요와 혼자만의 고독으로 차 있다. 바다곶의 끝에 하늘로 치솟아 있는 등대는 그녀의 시야를 채우고 그녀의 상상 속에서 안개가 되고, 유령이 되고, 번쩍이는 검이 되고, 거대한 남근이 되고, 밤의 검은 욕망이 되어 그녀를 가득히 채운다. 바다는 치솟는 파도가 일으키는 파멸의 유혹과 심연을 알 수 없는 죽음에의 이끌림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그것은 끊임없는 파도와 넘치는 고요의 이중성으로, 신열을 앓게 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반복으로써 검고 무겁고 거대한 욕망이 되어 우리를 끌고 간다.

어느 날, 등대 너머에서 마구잡이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어지럼증 속에서, 열 여덟 살의 지예는, 숲으로 난 길로 등대의 사내를 뒤밟는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온 그를 향한 이끌림을 그녀는 견뎌낼 수가 없다. 등대를 향해 가풀막을 치달으며 가빠오는 숨결은 그녀를 이제는 더 피할 수 없는 욕망으로 속수무책 이끌어 간다. 우리의 삶이 운명적 존재라고 밖에는 더 말할 수 없는 무의지적인,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무의식의 이끌림에 의하여 허청대며 등대 길을 오르는 행위로 나타난다. 사내는 무엇이던가. 안개에 둘러싸인 신비와 수수께끼와 마법인가. 그러나 그것은 지예가 만들어 내는 타자의 거울일 뿐이다.

스무 해가 흐른 이제, 그녀가 그렇게 욕망한 것은 무엇이든가. 지예가 섬을 떠나 뭍에서 만난 남편과의 생활은 이미 그녀의 것은 아니었다. 등대의 사내를 다시 만나게 되고 사내에게 사로잡혀 사내를 꿈꾸는 것은 자신을 다시 만나는 것이며 라깡이 말하는 저 실재계로의 보이지 않는 길 찾음의 욕망이다. 사로잡힌 그녀. "그 유령의 마법에 걸린 한 불쌍한 인간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른 소리에 이끌려 그에게로 다가가는 것밖에 달리 없"다. 이는 '발붙이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고 싶어하는 욕구'이며,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현실에서는 도저히 성취될 수 없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다시 만난 그 등대지기는 이미 "옛날처럼 그녀를 달아오르게 하는 그런 친숙한 존재"는 아니다. "그녀는 이 세상에는 실재하지 않는 그 무엇, 그러면서도 늘 그녀의 뇌리를 점령하고 있다는 그 의식 때문에 괴로워한 하나의 관념", 그런 비유로서의 그 등대를, 그 사내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현실적인 자기 파멸이나 죽음일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단지 "살려는 의지의 표현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것은 어디엔가 있는 그 실재계이자 비유적으로 가시화한 등대, "현상계와 관념 세계를 연결"하는 그 "빛기둥"을 껴안는 일이 되는 것이다.

"마침내, 그녀는 등대가 있는 그 험한 바위 언덕의 가풀막을, 이제 막 그 사내가 이쪽을 향해 내려오고 있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고 있었다. 물지게를 지고 마을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던 여느 때의 모습으로, 사내는 그녀를 향해 곧장 걸어왔다." 소설은 이렇게 그를 향해 나아가는 그녀의 지향의지로 끝나고 있다.

김인배의 「환상의 배」나 「등대곶」은 상상력을 통하여 저 이중성의 불가해한 실재계를, 바다의 그 무한정한 열림과 끊임없는 반복과 그것으로 말미암아 닫혀버리는 인간의 삶의 불확실성, 한계 같은 것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뀌는 궤적을 보여준다. 비록 그것이 자기 마멸의 또 다른 패배를 불러온다 할지라도. 다시 말해 그것은 언제나 우리가 보는 바로 앞에 있으면서도 우리가 가 닿을 수 없는 가 닿으려는 그 영원한 욕망일 뿐인 것을 보여 준다.

Ⅲ. 경남/마산의 해양소설

우리는 모성적 공간의 바다, 부드러움의 바다 이야기 이외에도 난폭한 물, 얼어붙는 견고한 바다의 상상력의 이야기를 몇 편 더 찾아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샤머니즘적 상상력의 소설이다. 어민들은 굿으로 산다는 명제를 붙일 정도로 샤머니즘과는 절대적인 관계에 있다. 바다사람들은 비와 바람과 바다와 섬이 사람에게 주는 자연 조건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자 아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한결같이 그 근원의 세계 안에 존재하면서 풍요와 빈곤, 열림과 닫힘, 소망과 원망, 해방과 구속 등 첨예하게 대립적이면서도 이중적 세계를 선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 바다가 일으키는 생성과 죽음 원형적 상상의 세계와 그것이 현실의 경험적 삶으로 구현, 인식되어온 삶은, 그러나 고난과 고통의 부정적 경험적 세계에다 사람들의 삶을 더 얽어매어 놓는다. 작가의 상상력은 바다 사람들의 의식에 잠재한 난폭한 바다, 무거운 바다가 가진 죽음에의 두려움을 바다를 샤머니즘으로 읽어내게 한다.

일반적으로 해양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는 「모비딕」, 「노인과 바다」 그리고 바이킹 영화 등에서 간접적으로 키워온 상상으로 말미암아 바다에서의 모험과 파도와 싸우는 뱃사람들의 고투를 다룬 것에 더 가 있다. 마산에서 태어난 김병총의 삽화로 든 「밀수선」, 진영에서 태어난 김원일이 쓴 항해 도중의 모험으로써 독자에게 흥미를 주는 「밀선(密船) 이야기」가 더 있기도 하다.

우리의 바다 소설은 광활한 바다에서의 모험과 자연의 극복이라는 투쟁적 삶과 죽음의 모습보다 항구와 포구, 조업 어선 그리고 섬사람들의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의 삶의 문제가 아니면 아름다움과 애잔함의 서정적인 관념의 바다 이야기에 더 가까이 가 있다. 이러한 환경을 바탕으로 한 우리의 소설은 경남의 바다 소설만으로는 해양소설이라는 한 동아리를 설정하기가 어렵다. 우리의 해양문학은 주로 어린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낸 남해안 출신의 작가들이 쓴 기억 속의 바다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바다는 여전히 우리들의 옆에서 때로는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때로는 두려움과 공포로 우리의 삶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발동시켜 우리의 삶을 문학적 진실의 이야기 세계로 이끌고 있다.

명형대 교수(국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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