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기고]장태현 명예교수
[교수기고]장태현 명예교수
  • 월영소식
  • 승인 2018.05.2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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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에게 배우는 퇴물교수의 애환

 

 2050년에는 세계 인구는 20% 증가한다고 한다. 65세 이상 인구는 2배 증가하여 한국은 노인 인구 비율이 36%로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높아 질 것이라고 한다.

 정년퇴임을 하고나니 갑자기 할 일이 없다. 나이가 65세지만 아직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 건강은 양호하다. 삼십년 이상을 학교에서 강의하고 연구한 것 밖에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다. 그야말로 어정쩡하게 지낸다. 삼시세끼 아내가 해주는 밥만 얻어먹고 있다.
 
 어느 날 한 신문의 광고란에 ‘고 경력자 모집’이 났다. 자격이 '국책연구원 책임 연구원으로 근무한자, 대학에서 부교수이상 그리고 산업체에서 연구 및 기술개발 담당 이사급으로 근무한 사람으로 50세 이상인 경력자' 이다. 모집 내용이 신기하여 서류를 제출하여 합격해 지난해 말까지 10여 년간 K국책연구원의 전문연구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최고 수준의 국제적인 연구 논문과 연구보고서 그리고 특허를 분석하는 일이고보니 자연히 나의 전공분야가 진행되는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실험과 수치해석을 수행하여 그 결과를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하고 SCI 저널에 투고해왔다.  

 올해 시작한 일 일부는 마무리를 못하고, 새로운 일은 자꾸만 쌓여간다. 올해 8월 중순경에는 ETM(Emerging Technologies in Mechanical Engineering) 2018이 Plaza 제주호텔에서 열리고, '3rd International Conference on Fluid Dynamics & Aerodynamics'은 2018년 10월에 독일 Berlin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ETM 2018은 지난 12월 말에 요약문을 보냈지만, 최종 요약 승인은 5월 말까지 결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발표예정 논문에 대한 실험을 시작하지 못하고, 실험장치만 준비 중이다. 더욱이 상용프로그램을 이용한 수치해석을 하여 실험과 비교해야겠는데, 프로그램에서 모델링이 미비하고, 메시 작업은 인플레이션이 잘되질 않는다. 실제 이 작업이 미비하여 체면 불구하고 부산에 있는 프로그램 회사까지 방문하여 자문도 구했다.
 
 어제는 K군에게 전화를 해보니 서울에서 교육 중이었다. 하는 수없이 제자인 L군에게 부탁하여 이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참 한심한 일이다. 이 나이에 프로그램 사용에서 미숙한 부분은 교육관이나 혹은 지인 그리고 제자에게 물어서 내손으로 일일이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이것이 대학원생이 없는 정년퇴임 한 퇴물교수의 어려움이다. 실험과 수치해석, 참고문헌 고찰, 발표논문의 영문논문 작성, 원어민과 영어회화 준비 그리고 발표논문의 PPT 등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꾸역꾸역 정유년 한 해도 가버리고 무술년 새해가 다가오는데, 나이만 한 살 한 살 더 쌓여간다.

 연말에 전 직장의 동료 교수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입자영상유속계(PIV)’를 이용하여 대학원생의 실험을 부탁하였다. 오래간만의 부탁이라 허락하고 나니 바로 학생이 찾아왔다. 과제의 제목과 실험 장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계측장치를 보여 주고 이에 적합하게 실험 장치를 제작해 오라고 하여 2개월 정도를 소비하여 실험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동료교수와 학생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 연구가 모두 지연되어버렸다. 

 우선 내 연구과제에 대한 참고논문을 검색하기 위해 경남대학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ScienceDirect’를 검색하니 사이트가 없다. 알고 보니 지난 연말로 이 사이트는 구독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인근 C대학도서관으로 갔다 국립대학이라선지 ScienceDirect 외에도 국외학술 DB가 많다. 관련자료 몇 개를 다운로드 받고는 외부 접속 관계를 문의하니 도서관 회원등록과 창원시민으로서 ‘발전기금’을 내야 된다고 한다. 발전기금을 내고 회원ID를 받았다. 입수한 참고 논문을 검토해보니 내용이 미비하여 다시 K연구원의 정보 분석실에 부탁하여 ‘Engineering village’와 ‘Web of Science’에서 내 연구과제의 키워드 검색을 요청하였다.

 다행히 나의 연구 분야에 대한 좋은 논문자료를 입수하여 연구방향을 설정할 수가 있었다.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필히 원어민 영어 회화를 2개월 정도 공부해왔다. 나이 때문인지 이 준비가 없으면 매번 논문발표 중에 실수를 하였다. 그런데, K대학 국제어학부에 원어민 영어회화 강의를 신청하니 “일반인이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하니 학생들의 불평이 많다” 면서 거절한다. 하는 수 없이 또 C대학의 어학원을 찾아 원어민 영어회화를 신청하여 수업을 받은 지가 7년여가 지났다. 원어민 영어회화 수업을 받으면서 투고 예정인 영어 논문을 교정 받을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간단한 영작은 메일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누군가는 이 나이가 집에 있으나 산에 있으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제자에게 배우고, 가끔 애프터서비스도 해주고 이렇게 사는 것이 사제지간인가? 뜻밖에 H산업진흥회에서 전문연구위원으로 선정되었다는 통보가 온다.

 아직 퇴물도 쓸모가 있다 생각하니 힘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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